참고문헌: p. 271-275 전자자료(e-Book)로도 이용가능 이용가능한 다른 형태자료: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전자자료]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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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알고 보면 할 말이 많답니다
1. 투명하게 쓰는 기쁨 작가는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입니다 언어 사이를 종종거리는 기분 번역가를 갈아 넣어도 되는 걸까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중요해
2. 시간에 낡지 않도록 물살을 버티는 단어들 ‘요즘 애들’ 말투 배우기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말 네 글자의 명쾌함 다시 쓸 용기
3. 옮긴이의 진심 우리는 투명한 그림자야 교정지 위 붉거나 푸른 마음 아까운 책, 아깝지 않은 우리 괴물을 무찌르려고 퇴근합니다 ‘노잼’이라는 말의 위로
4. 책을 사랑하는 가장 지독한 방식 책의 탄생을 함께하는 꿈 옮긴이의 이름을 기억하다 내가 길들인 ‘강아지’들 번아웃이 온 당신에게 여자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5.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은 그 책을 번역하지 못한 이유 ‘그녀’에서 ‘녀’를 지우다 심장으로 옮긴 문장 끝내 번역할 수 없더라도 너와 나의 최고의 순간은
맺음말: 너와 나의 번역 이야기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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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동녘이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 노지양X홍한별, 안희제X이다울, 이라영X전범선, 이현정X하미나… 지금 가장 뜨겁고 빛나는 작가들의 편지! 동녘에서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은 마주보며 타오르는 불처럼 두 작가가 주고받는 대화가 피워내는 미덥고 빛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첫 번째 맞불은 독자와 편집자가 신뢰하는 번역가, 노지양X홍한별이 지핍니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부터 혐오와 비하가 담긴 내용을 옮겨야 할 때의 고민, 가사와 일을 병행하는 고충,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까지, 외로움이 깊어지는 코로나19 시대에 다정한 여자 친구들의 편지가 우리를 반짝이는 우정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번역은 내가 글이 되는 과정인 것 같아.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두 번역가가 읽고 쓰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간섭 《나쁜 페미니스트》,《트릭 미러》등 화제작을 우리말로 옮기며 한국 페미니즘의 경계를 넓힌 노지양과 “섬세하고 가독성 높은” 번역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홍한별이 번역과 삶에 관해 서로에게 띄운 편지가 우리에게 도착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자 결혼과 육아라는 경험을 공유한 여성이기에 적은 수입에 관한 고민과, 혐오와 비하가 담긴 내용을 한국어로 옮겨야 할 때의 딜레마,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가는 언어 감각에 대한 걱정 등을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다. 둘은 서로에게 안전한 청자와 미더운 화자가 된다. 하지만 상대를 함부로 침해하지 않으려 조심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지양이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해 들려줄 때, 한별은 섣불리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편지 곳곳에 이런 예의 바른 심호흡이 뭉클하게 녹아 있다. “사회적·경제적 보상이 많지 않은데도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건 어쨌든 글을 쓸 때의 기쁨 때문이 아니겠어? 원문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조심스럽게 내 언어로 어루만져 이루어내는 일. 거기에 속절없이 낚여버린 거야.” 읽고 쓰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번역을 시작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책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그야말로 ‘언어생활자’다. 문자 그대로 언어 안에서 먹고, 살고, 미워하고, 마침내 사랑하고 마는 노지양과 홍한별의 편지가 연결이 희미해져가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친구, 그리고 우정이라는 반가운 말을 알려줄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운명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이 규칙일지라도 우리가 알지 못한 투명한 그림자들의 조용한 분투 번역은 외국어를 물처럼 투명하게 번역해서 모국어로 옮기는 일이다. 그러나 “번역이 투명하다는 것은 번역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서로 다른 언어가 겹쳐질 때” 빚어지는 어긋남과 마찰을 부드럽게 다듬었다는 뜻이므로 매끄럽게 읽힐수록 번역가의 개입이 많은 것이다. 한별은 소설《클라라와 태양》을 옮길 때, 사람의 말이 낯선 안드로이드 주인공의 특징을 강조하려 일부러 어색하게 쓴 표현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독자의 비판을 받고 마음이 무너졌다. 지양은 한별의 번역 덕분에 소설이 더 애처롭게 느껴졌다고 답장하며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와 《헝거》번역이 파파고보다 못하다는 댓글도 받아보았다”는 농담으로 한별을 웃긴다. 번역은 기준이 없기 때문에 번역가의 판단이 중요하다. 두려움이 앞설 때, 일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참 든든할 것이다. 한별은 최대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옮기는 게 외국어만의 매력을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닌지, 낯선 외국어를 그대로 두어서 그곳의 문화와 언어의 특징을 한국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역시 뾰족한 수는 없다. 다만 지양은 우리의 목표는 “독자들에게 정확하면서도 가독성 있고, 장르에 따라 감동까지 주는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며, “언어의 매개자, 조용한 그림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자고 응원한다. 진심이 담긴 격려가 일에 지친 독자들의 등을 두들겨줄 것이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데에서 느끼는 기쁨”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홍한별보다 번역의 귀재가 있다. 원서의 유행어를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옮겨야 할 때, 한별은 일명 ‘네이티브 스피커’를 찾아 고견을 듣는데, 우습게도 고등학생 아들이다. “엄마 어릴 때는 ‘캡빵이다’ (...) 한때는 ‘짱이다’라고도 한 말에 해당하는 요즘 단어는 뭐야?” “요새는 ‘쩐다’라고 하는데.” 호기롭게 고견을 받아 적었건만, 유행어는 금세 바뀌어 이런 핀잔만 듣는다. “요새 ‘쩐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어딨어?” 난감한 건 지양도 마찬가지. 모범생, 덕후, 괴짜 사이에 걸친 ‘너드’라는 신조어를 콕 집을 표현이 없어 “SNS를 들여다보면서 ‘요즘 애들’ 말투를 배운다.” 한별이 고안해낸 너드 벤다이어그램은 ‘빵 터지게’ 하는 책의 묘미다. 지양은 언젠가 내성적이고 소심한 번역가들이 좋아하는 책과 번역에 대해서 말할 때는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떠들던 날을 회상한다. “이렇게 하루짜리 수다쟁이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실생활로 돌아갔을 때 번역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brother’가 형인지 동생인지 끝까지 몰라서 저자에게 메일을 보냈다거나, 사투리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심했다는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간다고 해서 누가 귀를 쫑긋할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그래서 지양과 한별은 “열렬히 서로를 지지하고 더 말해달라고” 부추긴다. 한별은 지양이 더 없이 아름답게 번역한 “벨벳처럼 그윽했다”라는 표현에 감탄하고, 지양은 아끼는 책을 한별에게 재잘재잘 소개한다. “책을 읽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주는 특별하고 은밀한 기쁨이 없었다면, 이 일을 이토록 오래하지 못했을 거라는 걸. 왜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종종거리는 일이 여간해서 질리지 않는 걸까.” 저자 옆의 작은 이름으로 남겨져 조명받지 못하고, 경력에 비해 수입도 적지만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런 애정 때문일 것이다. 한별의 말이 역시 오늘도 책을 놓지 못하는 독자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필연적으로 나를 조금 닮았겠지만, 나도 이제 이 책을 조금 닮았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을 때 조금 책을 닮아갈 것이다. 그렇게 낯선 우리는 서로를 길들인다. 책은 우리의 공감을 확대하고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어떤 여자들이 지껄이는 욕은 세상에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리거든” 일하며 밥하고 애 키우는 여자들의, 말을 옮기는 쾌감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지만 출석부의 이름 순서만큼 거리가 있던 지양과 한별이 다시 만난 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10여 년이 흘러서였다. 번역가, 그리고 아내와 엄마라는 위치가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번역을 하는 지난 삶이 3단 저글링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한별을 이해하는 건 역시 “세상에서 제일 하고 싶은 게 일인데, 아이가 일찍 하교하면 일할 시간이 없으니 항상 미진하고 답답”함을 느껴본 지양이다. 그래서 어떤 번역은 쾌감이고 해방이다. 특히 욕은 “김연경 선수가 ‘식빵’을 외칠 때처럼 통쾌”하다. 한별은 신분상승한 여자 주인공이 어릴 때 친구를 만나 스스럼없이 내뱉는 욕이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기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쉽게 무시되고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지르는 비명처럼” 시원하게 옮기고, 지양은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강간한 납치범을 죽일 때 외치는 욕을 통쾌하게 휘갈기며 독자에게 희열을 안긴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뭉툭하게 부르고, ‘처녀작’ 같은 차별어가 책에 거리낌 없이 쓰이던 시절, 두 저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다가도 종종 소외되었다. “이른바 영문학 ‘정전’ 가운데 가끔 관습적인 여자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인물이 나오는 작품도 있긴 했지. 그런데 (...) 마음을 주고 응원하다 보면 왜 끝 부분에 가서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거니.” 번역가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통과한 책이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투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별은 남성형을 기본으로 삼아 여성형을 파생시킨 단어들은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며, ‘she’를 ‘그녀’ 대신 ‘프랑스어 선생님’으로 고치고, 지양은 ‘Black and White people’을 ‘흑인과 갈색 피부의 사람’으로 다시 쓰는 용기를 낸다. 다만 번역가는 중개자일 뿐 창작자가 아니라는 숙명을 인정하며,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려 깊게 단어를 고르기로 다짐한다. 한별의 말처럼 번역가란 “‘상처 주지 않는 신랄한 말’, ‘불쾌감을 주지 않는 더러운 말’, ‘트렌디하면서 생명력 있는 말’ 등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말들을 계속 찾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열렬히 서로를 지지하고, 사랑을 말해달라고 부추길 것” 우정으로 기록하고, 미래에서 도착한 인생의 스포일러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에 고립과 단절이 지속되고 있다. 익숙해지지 않는 고독에 피로감이 쌓여가는 요즘, “30대 후반에야 서로를 발견하고 40대에는”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다는 지양의 말은 우리의 미래가 결코 외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믿음직스럽다. 그의 말처럼 우정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편지를 다 쓴 뒤에야 지양은 고백한다. 한별을 안 건 유명한 번역가여서가 아니라 홀로 자신의 글을 써내려가던 블로그였다고. “나를 기억이나 할까 싶고 부담스러워할까 봐 아는 척도” 못했지만 어디선가 자신처럼 “아이를 키우고 번역을 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자신에게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를 속삭인다. “누가 그런 걸 읽고 싶어 해?” 책을 쓰는 게 번역가의 몫인지 망설이던 한별은 그런 지양이 내민 손을 붙잡고 용기를 낸다. “할 수 있어, 아주 재밌을 거야.” “내 친구들은 연배가 많은 분들의 경험과 통찰을 ‘인생 스포일러’라고 이야기하거든. 내가 번역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우리의 편지를 읽었다면 도움이 되었을까?(...) 흥행 영화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수긍이 가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결말을 보여주고 싶구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번역의 눈물과 웃음뿐 아니라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고충, 읽고 쓰고 옮기는 삶에 대한 사랑까지 지극하게 담긴 이 편지들이 우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기분 좋은 ‘스포일러’가 되어줄 것이다.
동녘의 ‘맞불’ 시리즈는 계속 타오릅니다 청년의 시각으로 질병과 장애를 섬세하게 분해하는 안희제X이다울, 에코페미니즘과 동물권을 종횡무진 사유하는 이라영X전범선, 수면 아래 잠긴 여성의 우울과 자살을 건져 올리는 서울대 의료인류학과 이현정X《미쳐 있고 괴상하며 우울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쓴 하미나의 편지가 타오를 예정입니다. 이 그치지 않는 대화들이 독자와 사회를 끓게 하는 작은 불티가 되길 바랍니다.
책속에서
[P.6~7] 하지만 우리끼리는 여전히 열렬히 서로를 지지하고 더 말해달라고 부추겼다. 번역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가 특정 언어와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는지, 문학이나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기쁨을 길어내는 사람인지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책상 위에 책이 놓여 있어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고, 쓰는 행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단어 하나를 바꾸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나 이외에도 또 있다는 것은 큰 위로였으니까.
[P. 20~21] 이렇게 번역이 투명하다는 것은 번역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잖아. 서로 다른 언어가 겹쳐 질 때 어긋남과 마찰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든 무마했다는 거니까. (...) 그러니까 번역은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글쓰기고, 창작의 충동과는 전혀 다른 충동을 따르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쓰는 과정이긴 하지. 그리고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고. 같은 글을 번역해도 번역가마다 다른 글이 나오니까.
[P. 82~83] 그런데 평소에는 우아함의 표본인 이 사람도 옛 친구인 서술자 앞에서는 f-word를 스스럼없이 써.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는 f-word가 인물의 성격이나 개성을 드러내려고 쓰이기도 하고 거친 말이 주는 반전의 쾌감 같은 것도 있어서 ‘제기랄’, ‘젠장’ 따위 번역용 욕으로 순화시킬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서술자가 하는 욕은 누군가를 깎아내리고 기를 죽이기 위해서 하는 욕이라기보다는, 쉽게 무시되고 없는 존재로 치부 되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지르는 비명처럼 들릴 때가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