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듯합니다. 온라인에서만 쓰던 오타와 신조어가 이제는 현실의 중요한 문서나 공적인 자리의 발표에서도 등장합니다. ‘한글 파괴’라는 현상도 이전보다 많아졌다고 해요. 틀려도 맞고, 언어유희의 해방감도 커지니 맞춤법이 잘못됐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언어생활의 기본 규칙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오타의 ‘재미’는 맞는 말을 알고 있어야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입니다. ‘일해라절해라.’ 남의 일에 간섭한다는 의미로 쓰는 이 표현이 신선하고 기발한 신조어가 되려면 ‘이래라저래라’라는 표현의 언어유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1도 없다.’ 한국어를 잘 몰랐던 외국 출신 연예인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잘못 쓴 이 신박한 표기법도 올바른 말을 모른다면 재미있는 유행어가 될 수 없었겠지요.
예전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단어의 수도 줄었다고 하고요. 동영상이 책보다 익숙하고 글보다 이미지가 편한 세대라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사실 문자는 여러 가지 언어 중에 가장 다루기 힘든 방식이에요. 그림이나 소리와 같은 추가 정보의 도움 없이 오직 문자라는 기호에 미리 정해둔 약속을 풀어 뜻을 이해해야 하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며 해석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죠._<들어가는 말> 중에서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학생들끼리만 아는 별명으로 부르며 장난을 칩니다. 어른들이나 기성세대가 모르는 말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은 묘한 연대감과 같은 또래라는 소속감을 형성합니다. 앞에서 봤던 ‘아더메치’도 아니꼽고 더러운 기성세대의 행동을 비판하는 말이었는데, 반항심이 드러나지 않고 혼나지 않도록 암호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유행했던 ‘특공대’ ‘옥떨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부모님께 물어보면 “오랜만에 듣는다”라고 반가워하다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라며 혼을 낼지도 모르겠네요. ‘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를 줄여서 ‘특공대’입니다. 친구에게 ‘넌 머리가 나빠’라고 놀릴 때 썼던 단어이지요. ‘옥떨메’는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의 줄임말이에요. 생김새를 가지고 장난칠 때 사용했는데 못생김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시무시하네요. 비속어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욕이나 마찬가지인 단어들이죠. 말을 줄이니 욕인 듯, 욕은 아닌 듯한 신조어가 됐습니다. 요즘 ‘눈치 없는 새X’를 줄여 ‘눈새’라고 하는 것처럼요.
이럴 때 줄임말은 일종의 은어, 숨겨진 언어입니다. 알아듣는 사람만 웃을 수 있고, 놀림을 당하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한국어이지만 의미를 알 수 없도록, 우리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만든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반복되는 일인데도 어른들이 새삼스럽게 이런 습관은 나쁜 것이라며 혼을 내는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욕하고 상처를 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어른들도 그랬고, 원래 아이들은 재미로 그런 말을 쓴다고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습니다. 친구를 놀리고 또래에 끼워주지 않으려고 폭력처럼 쓰는 말을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지금 10대가 새로 만들어내는 언어의 수위는 과거보다 훨씬 셉니다._<신조어의 뜻을 알려주지 않는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