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표지이미지

- 청구기호: 951.7-24-14

- 서명: 새우에서 고래로 : 세계의 눈으로 본 한국의 어제와 오늘

- 편/저자: 라몬 파체코 파르도

- 발행처: 열린책들()

서평
 ‘외부’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떠할까?
서평자
 정일영,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발행사항
 694 ( 2024-09-04 )

목차보기더보기

프롤로그: 한국 역사의 개괄
독립과 전쟁, 그리고 가난: 1948~1960
박정희 시대: 1961~1979
부와 민주주의를 향하여: 1980~1987
자유와 위기: 1988~1997
진보주의 10년: 1998~2007
글로벌 한국: 2008~2023
에필로그: 한국의 미래

서평보기더보기

“한국은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미래가 몰고 올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점만큼은 분명하다. 한국은 그 지점에 도달했으며 흐름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 331쪽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주말을 지나 등교했던 월요일 아침을 기억한다.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 3학년의 눈에도 매사 냉소적이던 담임 선생님은 주말의 흥분을 아직도 가라앉히지 못하신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조회 시간을 개막식에 대한 극찬으로 꽉 채우셨고,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 되었다고 선언하듯 말씀하셨다. 특별히 선생님만 그런 반응을 보이신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외출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던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성화 봉송을 직접 보러 나가셨고, 개막식이 있던 토요일, 집 앞 골목엔 아무도 지나다니질 않았으니까. 수십 년이 지나 개론 수업 시간에 이 시기를 설명하며 개막식 영상을 보여주고는 하는데, 영상 속의 앵커는 유독 “뿌듯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지금 보면 ‘뭘 저렇게까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두 유 노우 지성팍?” 인터넷에서 소위 ‘국뽕’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밈처럼 사용하는 말이다. 이처럼 ‘국뽕’에 대한 냉소가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여전히 보편적이다. 한국 음식을 먹는 외국인이나 K-드라마, 영화, K-pop에 대한 외국인의 반응이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반대로 특정 사건을 두고 ‘국제적 망신’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하고, 외신의 보도에서 한국이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어쩌면 한국인은, 애써 아닌 척하지만 아직도 외부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관계 전문가이자 스페인 사람인 라몬 파체코 파르도가 쓴 『새우에서 고래로』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입장에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외국인의 한국사 통사 서술이 얼마나 매력이 있을까? 굳이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스페인 저자에게 한국의 역사를 들어야 할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우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한 제목만 보더라도, 이 책의 서술이 어떠할지 너무나도 예상이 되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호기심이 슬쩍 생기기도 한다. 이 책의 홍보 문구에서 사용한 표현처럼, “세계의 눈으로 본 한국의 어제와 오늘”은 어떠할지 궁금하면서도 신경 쓰이는 것이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방식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8쪽) 『새우에서 고래로』라는 제목만을 보면, “아, 이거 또 ‘국뽕’ 스토리인가……”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변화‧발전의 이야기인 것이 분명하므로 이런 걱정(?)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본 한국사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제아무리 역사를 전공한 한국인이라도 이 정도 두께의 한국사 통사를 썼다면 절대 포함할 생각을 하지 못할 내용도 들어가 있다. 저자가 외국인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는 하지만, 다른 방식의 통찰이 반영된 책이기에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매우 재미있다. 마치 ‘디펜딩 챔피언’ 독일에 승리를 거두던 2018년 월드컵 영상을 종종 다시 보는 것처럼. 책은 단군 신화부터 시작한다. 매우 익숙한 구성이다. 하지만 그 시작부터 1948년까지는 프롤로그에서 서술이 다 끝나며, 분량도 50쪽이 채 되지 않는다. 절반이 넘는 분량을 1980년대 이후에 배분하고, 2000년대 이후의 서술도 상당히 자세하다. 김연아에 관한 서술이 단군에 맞먹을 정도이며, 변화하는 한국 여성의 지위와 페미니즘에 관한 서술도 빠뜨리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인 역사가가 한국사 통사를 썼다면, 1993년 한국 최초의 게이와 레즈비언 단체의 설립(196쪽), 배우 홍석천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외부에서 궁금해하는 한국의 역사는 이런 점들인 것이다. 외부의 시선이 궁금한 이들만이 아니라, 외국인 유학생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설명해야 할 역사 전공자 또한 읽어볼 만한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