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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03.3-23-4

- 서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 편/저자: 자미라 엘 우아실, 프리데만 카릭

- 발행처: 원더박스()

서평
 디지털미디어 시대, 서사적 정치성의 행방
서평자
 최기숙,연세대학교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교수
발행사항
 682 ( 2024-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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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한 세계 - 프롤로그
2. 모험을 소환하다 - 구원자‧악령‧영웅
3. 거부 - 나는 어떻게 나만의 영웅이 되는가?
4. 멘토와의 만남 - 단어‧문장‧그림 : 이야기의 수단
5. 첫 번째 문턱을 넘다 - 인터넷은 우리의 서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6. 혹독한 테스트‧동맹자‧적 - 어떤 서사가 우리 세계를 결정하는가
7. 가장 깊은 동굴로 들어가기 - 우파의 영원한 유혹
8. 결정적 테스트 - 독일과 미국은 어떤 스토리를 만들었는가
9. 칼을 움켜쥐다 - 별로 강하지 않은 성별
10. 귀로 : 인류 종말은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지 않는다 - 기후 스토리가 실패하는 이유
11. 부활 - 지칠 대로 지친 원숭이
12. 묘약을 들고 귀환하다 -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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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개개인은 2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1년에 처리했던 양보다 더 많은 정보를 하루에 처리해야 한다. … 우리는 문예학자 조너선 갓셜이 ‘스토리 폭발’이라고 부른 시대에 살고 있다.” - 238쪽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시대에 여전히 영웅 서사가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한편, 사회가 격변할 때마다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는 서사의 정치성과 확장성에 주목한다. 저자는 진화론, 사회학, 심리학, 정치철학, 신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 융합학제 간 방법론으로 서사에 접근한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널리 흥행하고 오래 각인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인지과학을 응용해 정보 전달과 기억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야기의 기본 단위를 구성하는 문장과 단어의 특징과 언어권별 차이, 이에 따른 기억의 형태에 대해 논의한 것은 자못 구체적이다. 예컨대 독일어에서는 ‘팔이 부러졌다’라고 하기보다 ‘내가 팔을 부러뜨렸다’고 표현한다. 스페인어에서는 ‘꽃병이 부서졌다’고 말해서 누가 깨뜨렸는지를 밝히지 않는다. 이야기의 정치성은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독자의 반응을 다르게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발휘된다. 예컨대 도시의 범죄성이 ‘야수’로 표현된 경우, 피험자들은 범죄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반응했지만, ‘바이러스’로 표현된 경우, 범죄 예방 대책을 지지했다. 물가가 ‘크다’거나 ‘무겁다’고 하지 않고 ‘오른다’고 말하는 것, 심장 온도와 무관하게 마음을 ‘따뜻하다’거나 ‘차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사유가 은유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야기의 세계는 초미세 신경망으로 이루어진 감성, 인지, 사유, 상상의 복합체다. 이야기를 즐길 때 사람은 복합적으로 자기를 재구성하며, 소통을 통해 정교한 연결성의 고리를 찾는다. 일상적 화법에 반영된 문장 형식을 이해하면 인간관계에서 화자가 지향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상대가 지시형, 언약형, 표현형, 선언형 중에서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관찰해보면, 그가 무엇을 지향하는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말은 행동에 상응하는 권력적 도구다. 언어는 약속의 체계이고 이야기는 이것의 정교한 그물망이니, 그 자체가 공동의 허구에 대한 합의다(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강조한 문명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저자는 대중의 인과적 조작을 서사적 차원에서 수행해 목적에 성공한 역사적 사례를 소개한다. 인기 있는 콘텐츠가 순식간에 더 큰 인기를 얻는 것은 대중심리의 작용이며, 서사 또한 그렇다. 서사는 공감대 없이는 작동하지 않기에, 종교와 경제가 세상에 발휘하는 힘과 등위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과거에 인종을 둘러싼 각종 담론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서사에 기반을 두고 정치, 의학, 사회, 경제, 감성 전반에 걸쳐 배제와 혐오의 파장을 일으켰다. 코로나 팬데믹이 자연재해처럼 갑자기 엄습했다는 발상은 환경에 대한 반성을 분노로 대체시켰다. 현대인이 지금 당연시하며 의지하는 신념의 체계, 생각, 공감대 자체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파되는 과정에는 문명사의 메커니즘이 압축된다. 단지 이야기를 즐기기에 앞서, 이야기가 구조화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에 매개된 정치성을 파악해야 이야기라는 거대한 힘의 논리에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이야기는 너그럽고 재미있게 자기의 모든 걸 풀어헤쳐 그 앞에 모인 이들에게 한없이 베푸는 것 같지만, 반대로 그들을 한입에 꿀떡 삼키는 괴물이다. 파시즘의 정치적 힘, 디즈니 세계관의 감성 파워, 스타워즈 시리즈의 경제 동력, 더 나은 자신이 되라는 자기 계발 등은 모두 서사로 발휘된다. 마음 챙김이나 힐링 담론은 사회 문제를 개인 문제로 포섭하는 서사 구조 속에서 현실의 모순을 내면의 심리로 치환한다. 삶이 이야기의 바다라면, 항해자는 듣고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말하는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때로는 말하지 못한 것, 말해지지 않은 것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서사의 바다에서 살아가는 독자가 책임져야 할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