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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LM340-24-8

- 서명: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 편/저자: 손호영

- 발행처: 동아시아()

서평
 AI 시대에 사람 판사의 자세
서평자
 강민구,법무법인 도울 대표 변호사, 前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발행사항
 681 ( 2024-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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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시시포스의 돌_진실을 위하여
제2부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_설득을 위하여
제3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_이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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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사가 관할구역 내 음주운전을 근절하기로 마음먹었다. … 덕분에 관할구역에서는 음주운전 사건이 정말로 줄기는 했다. 다만 관할구역 인구도 덩달아 줄었다고 한다. 음주운전을 한 사람들이 그 판사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판사들은 일단 대체로 웃는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판사의 선의가 관할구역 인구 감소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물론 그 웃음 뒤에는 직업적 영향력에 대한 자부심도 어느 정도는 섞여 있을 테다.” - 18~19쪽 서평자는 법관으로 지난 36년간 10,201건의 실체 판결문을 남기고 정년으로 법원 문을 나섰다. 온갖 감회가 스침을 숨길 수가 없다. 때마침 후배 법관의 멋진 책을 보니 서평자가 외치고 싶었던 판결의 진정한 모습을 다 설명해 주어 반갑기가 그지없다. 생성형 AI 시대가 왔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서평자가 <디지털 상록수>를 심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문맹이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 격차)는 깨부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내가 AI, IT, 디지털을 역설하는 강의를 할 때조차도 후반부에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날로그다. 아날로그적 내공을 쌓은 인간은, AI도 완전히 이기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날로그적 내공을 쌓기에 좋은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 답을 찾던 와중에, 어떤 흥미로운 답을 발견했다.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는 손호영 판사는 이 질문에 대해 ‘판결’이라고 답한다. 판결이라고? 의외이고 의아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맞다. 판결이야말로 판사가 소송 당사자와 직접 맞대면하고 소통한 뒤 내린 숙고의 결과물이다. 판결에는 판사의 통찰과 조감(鳥瞰)이 지문처럼 묻어나온다. 저자는 판결의 실제 문장을 실마리 삼아 그간 판사가 해온 ‘생각과 고민, 그리고 성찰’을 성실하고 정갈하게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해설을 별미처럼 곁들였는데 그 해설이 부담스럽지 않고 친근하며 정답다. 아마 그가 판사로서 판결에 가지거나 느낀 관심, 의문, 고민, 놀라움 등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내보이며 판결의 속뜻을 탐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쓴 책 이름이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인 것인가. 이 책에서 내 눈길을 끄는 장은 여럿 있었지만 한 꼭지만 가져와 본다. 책을 여는 첫 장의 에피소드다. 한 판사가 음주운전을 엄벌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덕분에 관할구역 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음주운전을 하면 그 판사를 피해 바로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이라던가. 이 이야기를 들은 판사들은 일단 대체로 웃는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했던 판사의 선의가 관할구역 인구 감소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물론 그 웃음 뒤에는 직업적 영향력에 대한 자부심도 어느 정도는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손호영 판사는 경계한다. 혹시나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판사가 가진 권한의 크기를 오해할까 봐. 그는 “사법부의 역할은 법이 무엇인지 선언하는 것”이라는 판결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판사의 말이 곧 법”이라는 것은 세간의 오해이고 “법이 곧 판사의 말”이라며 판사의 신독(愼獨)함을 새삼 새겼다. 그는 덧붙인다. 법이란 ‘판사의 말뚝’과 같기에, 판사가 ‘제아무리 멀리 벗어나려 해도 말뚝이 풀어 준 새끼줄 길이’만큼만 가능하다고. 나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판사가 기대야 할 동아줄은 헌법ㆍ헌법정신과 법률, 공평한 정의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의 처음부터 판사의 기본과 본질을 돌아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 사뭇 반가웠다. 여기저기서 ‘AI 판사’ 이야기가 나온다. 경각심을 가질 일이다. 판사로서의 업을 사랑하고 자부했던 나도 이 질문이 뼈아프다.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사람 판사인가, 아니면 AI 판사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저자가 책의 마지막에서 이야기한 ‘용기’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한비자는 ‘법불아귀 승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이란 말을 남겼다. ‘법은 부귀에 아부하지 아니하고, 줄자는 스스로 굽어서 측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판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자, 판사가 가장 판사다울 수 있는 원천이 바로 ‘용기’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AI 판사와 사람 판사의 차별점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추천사 중 유형웅 판사의 말을 인용해 본다. “아직 ‘인간 판사’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은 모든 독자분께, 이 책은 보통의 바람직한 판사가 가진 생각을 들여다보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사법부ㆍ법관ㆍ판결’에 대한 막연한 ‘편견ㆍ선입견’ 두 마리의 나쁜 개를 단박에 무너뜨릴 ‘백문이 불여일견’ 한 마리 개의 소임을 이 책은 그 자체로 웅변하고 있다. 강호제현(江湖諸賢)의 일독을 감히 권하면서 부족한 서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