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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 서명: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 편/저자: Paul Krugman

- 발행처: 한국경제연구원 BOOKS(2008-06)

서평
 보수의 바이블 앞에 반세기 만에 던져진 진보의 도전장
서평자
 박종규,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 박사, 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발행사항
 37 ( 2011-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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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추억
2장 길었던 도금시대
3장 대공황시대
4장 복지국가의 정치
5장 1960년대 : 혼란 속의 번영
6장 보수주의 운동
7장 심각한 불균형
8장 불평등의 정치
9장 거대한 착란을 일으키는 무기
10장 새로운 평등의 정치
11장 필수적인 의료보험제도
12장 불평등에 맞서기
13장 진보주의자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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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유명한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2007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간한 진보주의자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 이후의 보수주의가 소득격차를 지나치게 확대시키고 극심한 정치적 분열을 초래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잡고 중산층이 두터웠던 1950~60년대 미국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면서, 뉴딜정책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보장을 대폭 확충하고 부유층의 세 부담을 높이는 등의 신(新)뉴딜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 경제도 양극화가 해결되지 못한 채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음에 비추어 이 책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지 않겠나 생각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onscience of a Liberal』(진보주의자의 양심)이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진보주의자의 양심선언이라는 뜻이다. 이 제목은 1960년에 출판된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보수주의자의 양심)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골드워터의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언론이나 교수 사회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보수성향 대학생들에게는 하나의 운동권 서적이었다. 패트릭 뷰캐넌(Patrick Buchanan) 같은 사람도 대학시절 그 책을 바이블로 삼아 “읽고, 외우고, 인용했었다”고 한다. 20여 년 뒤 그 학생들은 네오콘으로 성장하였다. 크루그먼은 이들이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며 이들의 정신적 뿌리가 바로 배리 골드워터라고 지목한다. 골드워터가 대공황 이후 진보주의가 미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분개하며 그의 책을 썼듯이 크루그먼도 레이건 이후 보수주의 때문에 미국이 엉망이 되었다며 이 책을 썼다. 크루그먼은 자신의 책이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과 필적하는 책, 미래의 진보주의자들의 정신적 뿌리로 남길 바라는 의미에서 책 이름을 『진보주의자의 양심』이라고 붙인 것이다. 아쉽게도 골드워터의 『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는 국내에서는 아직 번역된 바가 없다. 그러나 우연히도 나는 몇 년 전 아마존에서 그 책을 주문해 읽어본 적이 있었다. 골드워터는 애리조나주 5선 상원의원으로 1964년 민주당 린든 존슨 후보에게 참패했던 공화당 대선후보였다. 비록 대권에는 실패했지만 100페이지도 안 되는 그의 얇은 책은 열광하는 군중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는 골드워터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강렬한 메시지와 카리스마 넘치는 문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수성향의 독자들이라면 이보다 더 속 시원한 책을 만나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미국 보수주의자들 생각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 비해 크루그먼의 책은 울림을 주기보다는 분석적이다. 데이터와 테이블, 사례의 인용이 골드워터의 책보다 훨씬 많다. 단단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나 골드워터의 선명함과 카리스마는 없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와 상원의원 30년 경력의 정치가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는 꽤 잘된 번역서다. 그가 말하는 미국의 문제점과 처방,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제점과 그에 대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최근의 처방들을 서로 견주어 가며 읽다 보면 요즘 같은 장마철의 지루함도 잊게 할 만큼의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진보성향의 독자라면 더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성향의 독자들에게도 일독(一讀)을 권한다. 마찬가지로, 진보성향의 독자들에게도 골드워터의 『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를 권하고 싶다.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한 가지. 골드워터와 크루그먼의 진단에 아무리 공감하더라도 그들의 처방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옮겨 오려 하지는 말기 바란다. 몸에 좋다는 약도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學而不思則罔)’는 옛말도 바로 그런 경우를 경계하기 위한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