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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04.237-23-1

- 서명: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 시간 빈곤 시대, 빼앗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 편/저자: 테레사 뷔커

- 발행처: 원더박스()

서평
 시간이 넘쳐나는 세상 그리기
서평자
 황규성,한신대학교 연구교수
발행사항
 671 ( 2024-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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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시간은 왜 늘 부족한가
2장 노동 시간
3장 돌봄을 위한 시간
4장 자유 시간
5장 어린이의 시간, 미래의 시간
6장 정치를 위한 시간
마치며 유토피아로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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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시간 주도권을 되찾은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형색색의 블록 더미로 우리 삶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 예측할 수 없고, 나만의 것이며, 공동체적인 방향으로.” - 347쪽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 같은 눈꺼풀을 떼고 학교로 달려간 아이들은 학원을 돌다가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다. 억지로 아이를 깨워 등교시킨 부모는 일터에서 만신창이가 된다. 귀갓길을 밝히는 건 어둠을 뚫고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이다. 저녁이면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도 싶지만, 그림의 떡이다. 우리 시대 삶의 풍경화가 이렇다. 세상이 온통 시간 가난뱅이로 가득하다. 자기를 한계치까지 쥐어짜라고 채근하는 한국이 유별나겠지만 독일도 시간 마름병이 심각한가 보다. 언론인 뷔커(Teresa Bücker)는 시간 부족에 허덕이는 삶을 고발한다. 학술서와 대중서 중간쯤에 자리한 이 책은 통계도 적절하게 가져오고, 학자들도 끌어오면서 설득력을 높였다. 글쓴이의 경험도 녹아있고 독일인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명이 컸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북부독일방송(NDR, Norddeutscher Rundfunk)은 이 책을 2023년 올해의 논픽션 저술로 선정했다. 번역도 깔끔하다. 번역은 반역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애초에 우리말로 쓴 것처럼 술술 읽힌다. 번역서에 있을 법한 해제가 없다는 점은 좀 아쉽다. 옮긴이가 자제력을 발휘했다. 주제넘지만 서평은 짤막한 해설 정도가 좋을 듯싶었다. 책은 여백 한 틈도 허락하지 않는 삶에 공소장을 내밀면서 시작한다. 이른바 ‘시간 빈곤’ 현상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내용이다. 2장은 노동 시간, 3장은 돌봄 시간, 4장은 자유 시간에 할애했다. 중간쯤 읽다가 눈치챘다. 원본 책 제목을 『모든 시간(Alle Zeit)』으로 뽑은 이유를. 잠자는 시간을 빼면 24시간은 돈벌이 시간, 돌보는 시간, 혼자만의 시간으로 나뉘는데 세 가지 시간이 균형을 이루어야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돈벌이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탓에 시간이 퍽퍽하다는 메시지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은 부제에서 풍긴다. 원본의 부제는 「권력과 자유에 관한 문제」다. 시간이 권력의 문제라고?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시간을 권력으로 대면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회사에서 모두가 8시간 일을 해도 사장의 시간과 사원의 시간은 다르다. 사장은 사원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 점을 예리하게 짚어내면서 시간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난다고 통찰한다(45쪽). 여기에 덧붙일 말이 하나 있다. 시간 권력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기도 하지만 지배체제로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가 돈벌이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서는 비인격적인 지배체제이기도 하다. 시간에도 권력이 깃들여 있다면 자유에서 답을 찾는 게 자연스럽다. 글쓴이는 자유를 “각자의 삶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르게 형성할 수 있는 실천이자 방식”으로 이해하면서(322쪽),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178쪽). 그렇다고 돈벌이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힘주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돈 버는 시간을 중심에 놓고 그 외 시간은 ‘나머지’ 시간으로 취급하지 말고 시간 사이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글쓴이가 한국에서는 그 나머지 시간을 ‘여가’라고 부른다는 걸 알면 아마도 펄쩍 뛸 것이다. ‘오롯한’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알려주면 그렇게 좋은 말이 있냐며 환한 웃음을 지을 것 같다. 저자는 독일의 현실을 매섭게 고발하고 있지만 이 책의 독자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시간 부족이나 시간 압박만큼은 한국인이 독일인보다 몇 수 위다. 2022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독일이 1,341시간인데, 우리는 1,901시간이다. 한국인에게 이 책이 토로하는 불만은 어린애 투정 정도다. 한국에서 진짜 시간 빈곤인은 이 책을 접할 틈도 없을 것 같다. 먼저 읽어본 사람이 퍼트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