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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951.91-23-15

- 서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편/저자: 허남설

- 발행처: 글항아리()

서평
 못생긴 도시는 없다. 못 사는 사람들의 도시가 있을 뿐이다.
서평자
 조명래,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석좌교수
발행사항
 661 ( 2024-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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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기며
1. 뭔가 수상한 재개발
2. 그때 그 마을의 기억
3. 진짜 사람이 남는 마을로
4. 골목이 회오리치는 동네
5. 덩칫값을 못 하는 아이러니
6.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7. 신림 반지하와 종로 고시원
8. 현실의 ‘홍반장’을 찾아서
9. 사람이 스무 살에 죽는다면
10. “떠나지 않게만 해달라”
11. 여기는 백지가 아닌데
12. 유산을 망각한 도시
13. ‘힙지로’의 교훈
발걸음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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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심지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곳이 서울에는 아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 못생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할 때,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조감도의 시선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경꾼밖에 될 수 없습니다. … 거리에서 조감도가 아닌 투시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펴야 합니다. … 못생긴 도시가 이런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 224〜225쪽 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곳들이 서울에는 아직도 널려 있다. 그런 곳을 ‘못생긴 도시’라고 한다.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는 한 일간지 기자가 발품을 팔아 속살을 헤집어 본 서울의 낡은 동네 얘기다. ‘근대 서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에겐 퍽 익숙한 얘기다. ‘이젠 그런 동네가 몇이 있겠어, 곧 다 없어지겠지’.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수입이 변변치 못한 이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 달동네 월세방에서 살아야 한다. 번듯한 직장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같은 처지의 동네 사람들과 봉제 일을 하면서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 공사장에서 필요로 하는 공구나 자재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점방들이 접근성이 좋은 도심 어디엔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도시에는 이들이 있는 ‘곳’이 어디엔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삶이 힘든 만큼 동네의 풍경도 남루하다. 못생긴 도시는 그러한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 알랭 리피아츠는 “가난한 지역이란 게 없다. 단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만 있을 뿐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시공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공간의 외피, 즉 ‘표층의 현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관계, 즉 ‘심층의 세계’를 들추어 볼 때 가능하다. 제목 ‘못생긴 도시’는 패러독스한 것이다. ‘못생김’은 ‘보는 것(seeing)’이 아니라 ‘보이는 것(being seen)’이다. ‘보이는 것’은 시각성을 말한다. 오늘날 화려한 도시공간은 상품과 자본의 힘을 비추는 환영을 띄고 있다. 드보르의 ‘스펙터클(spectacle) 사회’론은 자본주의적 기호와 기표가 난무하고 지배하는 후기 근대사회를 그리고 있다. 보이는 것의 수동성은 보는 것의 능동성으로 바뀔 때 시각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책 끝부분에서 ‘조감도의 시선’에서 ‘투시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이는 못생긴 도시’를 통해 ‘못사는 사람의 도시’로 보고자 한 것이다.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운상가 위에 올라가서 종로 2가부터 동대문까지, 종로-청계천-을지로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으로 참혹합니다.”(224쪽) 저자에겐 ‘참혹함’은 높은 데서 바라본(조감한) 낡고 어수선한 도시의 풍경일 뿐, 그 속에서 고단한 삶의 굴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참혹함’과는 무관한 것이다. 누군가 보기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 풍경이지만, 거기에는 그 나름의 복잡한 맥락과 까닭이 존재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감도의 시선에서 도시의 못생김은 ‘개발’하지 못한 모습이라면, 투시도의 시선에선 누군가의 삶을 ‘보전’하는 보금자리의 모습이다. 전자에서는 도시공간을 마치 돈과 상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가치(교환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후자에선 삶을 꾸려가고 지켜가는 가치(사용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재개발의 속도와 결과는 이 두 가치를 둘러싼 힘겨루기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다르다. 달동네 재개발에 관한 이 책의 남다른 점은, 이 힘겨루기로 아직 남아 있는 곳들의 모습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도시의 못생김’이 필요함을 다시 부각하는 것이다. 저자가 찾은 곳은 백사마을, 창신숭인지역, 다산동 골목 동네, 청계천변 공구상가지역, 세운상가지역 등이다. 기존의 다른 재개발 지역과 달리, 이들 지역이 돈이 되는 공간으로 빠른 변신을 못 한 까닭은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인 거주자들이 장소마다 똬리를 촘촘히 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싹쓸이 재개발 대신 ‘저층 거주지 보전’, ‘공동체 마을 만들기’, ‘장소와 사람 기반의 도시재생’이란 돈이 안 되는 방식으로 도시 정비가 추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실패’로 끝날 조짐들이 엿보이고 있다. 근자에 들어선 돈이 되는 싹쓸이 재개발을 위한 정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런 정책이 나오는 뒤에는 ‘세운상가 위에서 못생긴 도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참혹함을 느꼈다’는 누군가의 시각이 있다. 조감도의 시선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경꾼이 된 자들의 시각이다. 못생긴 도시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집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공공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경꾼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게 저자의 마지막 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