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표지이미지

- 청구기호: 951.6-23-10

- 서명: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 편/저자: 최지혜

- 발행처: 혜화1117(2023-06)

서평
 도시인의 근대적 욕망이 시작되는 공간, 백화점
서평자
 김지희,서울대학교 전공설계지원센터 전공상담교수
발행사항
 649 ( 2023-10-18 )

목차보기더보기

프롤로그 1933년 9월, 대구 청년 사업가 이근무의 경성 백화점 순례
1층 식품부ㆍ생활 잡화부
2층 화장품부ㆍ양품잡화부
3층 양복부
4층 귀금속부ㆍ완구부ㆍ주방용품부ㆍ문방구부
5층 가구부ㆍ전기 기구부ㆍ사진부ㆍ악기부

서평보기더보기

“이 무렵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은 안락한 환경 속에서 산책하듯 백화점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점원의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온갖 신문물을 마음껏 접해볼 수 있었다. 백화점에 머무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바깥 현실을 잊고 최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 물 건너온 박래품과 유행하는 온갖 물품, 말 그대로 ‘백화’가 넘쳐나는 스펙터클한 공간이었다.” - 54-55쪽 2020년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며 많은 사람에게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주었다고 하지만, 백화점과 명품의 인기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남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2022년 매출액이 2조 8천억 원을 넘어 국내 1위를 차지함은 물론, 전 세계 주요 백화점의 매출액을 앞지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백화점이 제공하는 다양한 고급 상품, 볼거리, 편리함, 그리고 백화점이 자극하는 끝없는 ‘소비의 욕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정확히 100년 전, 1920년대는 조선에 근대적 문물이 유입되어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일제 식민지로 인해 정치적 자유도 제한적이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했지만, 20세기 초반은 빠른 속도로 근대적 사회로 변화되기 시작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개항장을 통해 들어온 문물은 전국의 시장에서 유통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고가의 최신 상품들은 주요 대도시 백화점에 들어와 근대적 방식으로 진열(display)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 책은 1920년대 근대적 상점들이 형성된 후 경성을 비롯한 대도시에 백화점이 들어서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당시 백화점에서 무엇을 판매하였는지 층별로 품목별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상품 대부분이 현재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도 당연히 고급 물건들이 존재했지만, 백화점이 등장한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급 상품이란 ‘외국에서 수입’된,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이란 인식이 생겼으며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백화점을 애용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런 지위를 흉내 내고 싶은 사람들도 백화점에서의 소비를 통해 욕망을 풀어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암살>(2015)에도 경성 최고의 백화점이었던 미쓰코시 백화점을 재현한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안경, 시계, 고급 양장, 화려한 연회장과 엘리베이터는 (영화적 과장이 있을지언정) 모두 실존했던 것들이다. <암살>에 등장하는 ‘백인제 가옥’ 역시 실제 친일 거부(巨富)의 집으로 백화점에서 구할 수 있을 법한 근대적 가구(책상, 등의자, 테이블 등)와 찻잔 같은 상류층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다. 이 책은 경성의 백화점이 판매한 물품들을 층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으며 의류, 식품, 생활용품, 가전제품, 그리고 판매 제품에 대한 지면광고까지 아우르고 있지만, 엘리베이터의 존재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판매고를 극대화하기 위한 세련된 층별 분류 시스템은 현재의 모습과도 매우 유사한데, 그 유사성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직적 이동’을 하며 쇼핑을 즐긴다는 것은 당대에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광경이다. 그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백화점에 가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신문물이었으며, 수직적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대도시의 매력 있는 공간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경성에 근대식 건물이 많이 지어졌다 해도 일반인들이 5~7층 높이의 건물에 올라가는 것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기, 옥상정원에서 ‘커피’라는 새로운 음료 마시기, 공연 및 문화행사 즐기기와 같은 경험은 백화점이 판매하는 인기 있는 상품인 것이다. 100년 전 경성은 오늘날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낙후되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엄혹하고 빈궁하기만 했던 사회는 아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쳐도 백화점 매출이 매년 상승하고, 경색된 한일관계에도 일본 여행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처럼, 식민지 경성에서도 일제에 대한 반감과 저항 의식이 존재하는 동시에 일본에서 건너온 고급 상품을 소비하려는 수요는 대단히 컸다. 유행을 좇는 모던보이와 모던걸 덕분에 남촌의 미쓰코시 백화점을 비롯한 주요 일본계 백화점은 많은 사람이 찾아와 번성하였으며, 조선의 소상인들은 경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것이 연일 신문 기사에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양가적 태도와 모순된 욕망이 혼재된 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