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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791.43-22-20

- 서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 편/저자: 이나다 도요시

- 발행처: 현대지성(2022-11)

서평
 빨리 보고 치우는 이상한 시대에 세대와 문화를 바라보기
서평자
 정민아,성결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발행사항
 629 ( 2023-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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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작품에서 콘텐츠로
제1장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감상에서 소비로
제2장 대사로 전부 설명해주길 바라는 사람들
→ 모두에게 친절한 세계관
제3장 실패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 개성이라는 족쇄
제4장 좋아하는 것을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 ‘상쾌해야’ 찾는다
제5장 무관심한 고객들
→ 앞으로 영상 콘텐츠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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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나 오락에서 쉽게 무언가를 얻거나 빠르게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멀리 돌아가는 것은 꺼린다. 방대한 시간을 들여 몇백 편, 몇천 편의 작품을 보거나 읽는 과정,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관점을 얻는 과정, 결국에는 인생작을 만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을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 지름길을 찾는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간 가성비가 나쁜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타임 퍼포먼스가 나쁘다’라고 형용한다.” - 24쪽 2020년과 함께 시작된 팬데믹 상황이 3년간 세계인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나서야 20세기와 진짜 결별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팬데믹 이후 생활, 가치관, 감각, 예절, 문화 등 많은 것에서 거대한 변화와 마주하고 있다. 필자는 미디어와 예술, 문화 전반을 연구하는 연구자이지만, 영화전공자 입장에서 지금 펼쳐지는 영화관의 쇠락과 미디어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OTT 시리즈의 활황이 영화의 확장이라고 개념 지으며,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학계와 업계의 눈물겨운 노력 속에서 눈에 번쩍 띄는 제목이 들어왔다. 일본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위트 있는 제목은 콘텐츠 과잉 세상에 살고 있는 누구나에게 해당하는 행동이다. 이 책은 영화를 빨리 감아 보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미디어 산업, 세대론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양태, 포스트 팬데믹 문화 등 보다 큰 통찰로 나아간다. 우리는 지난 3년간 거리두기의 일상화를 겪으면서 OTT로 무수히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했다. 한 번에 10〜12부작 드라마가 공개되고, 완성도와 재미에 감탄하며 ‘이건 12시간짜리 영화야’라고 생각하지만,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 보는 건 물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드라마 홍수 속에서 마지막 회까지 몰입하여 볼 여유가 없다. 생계에 바쁘지만, 지인과의 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 화제가 된 작품은 봐둬야 한다. 그래서 배속 감상과 건너뛰기를 선택해서 끝까지 본다. 부족한 부분은 스포일러를 친절하게 제공하는 유튜브를 시청하여 보충하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위키트리를 참조한다. 그러면 이제 나도 이슈가 된 드라마를 다 소화했고, 또래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싸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봐서는 작품을 제대로 맛보지 못할 텐데.” 같은 말은 꼰대의 철 지난 수사로 보일 정도로 많은 이들이 빨리 감기로 작품을 대충 보아 넘긴다. 여기서 작품은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작품 감상’이 아니라 ‘콘텐츠 소비’가 익숙한 시대다. 소비에는 실리적 목적이 따라붙는데, 화제를 따라가기 위해,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등의 목적이 있다. 감상은 즐기는 것이고, 소비는 패스트푸드처럼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다. 이러한 시청 습관은 1990대 이후 출생한 소셜 네이티브인 Z세대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책에 인용한 데이터가 보여준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적용되는 Z세대의 특징은, SNS를 잘 활용하고, 돈을 쓰는데 소극적이고, 경험 소비를 중시한다. 공적인 관계보다 사적인 관계가 중요하고, 사회공헌에 신경 쓰며, 출세보다는 안정을,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을 존중한다. ‘빨리 감기’는 적은 돈으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으며, 사적 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 소재를 생산해 내는 데 유용하다. 또한 많은 것을 경험했다는 착시효과를 만들어 내며, SNS에 과시하고 싶은 표현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좋은 소재가 된다. ESG를 중시하며 개성이 중요한 Z세대에게 콘텐츠 감상 후 위트 넘치고 개념까지 탑재한 한마디 문장은 SNS ‘좋아요’를 누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다. 저자는 일본 경제 저성장의 늪에서, 실패하고 싶지 않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욕망을 ‘빨리 감기’라는 현상에서 읽어낸다. 동시에 이러한 가벼운 현상을 만들어 낸 영상 콘텐츠 생산자의 근시안적인 비즈니스 중심 마인드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하지만 리퀴드 소비로 설명되는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라는 현대인의 습관을 문명의 진화에 따른 필연으로 설명하면서, 저자는 가급적 적은 자원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려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어쩌면 정당한 소비일 것이라고 본다. 이 책조차 무려 다섯 쪽에 걸친 꼼꼼한 목차로 모든 내용을 미리 알게 해주는 패스트북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젊은 세대의 콘텐츠 수용 양상이 알려주는 자본주의 문화의 현재에 대해 수많은 영감과 분석하고픈 이슈를 품고 있는, 쉽지만 강력한 콘텐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