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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759.2-21-2

- 서명: 뱅크시 : 벽 뒤의 남자

- 편/저자: 윌 엘즈워스-존스

- 발행처: 미술문화(2022-04)

서평
 아웃사이더 예술가의 빈칸을 채우다
서평자
 김은정,세명대학교 교수
발행사항
 574 ( 2022-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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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투의 기술
2. 옛날 옛적에
3. 그래피티의 의미
4.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서
5. 익명의 행복
6. 예술가와 기획자
7. 집으로 돌아온 무법자
8. 음울한 즐거움
9. 홀리데이 스냅
10. 뱅크시 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1. 저기요, 벽화 사실 분?
12. 뱅크시의 비즈니스
13. 꼬드기는 손을 물다
14. 이론 없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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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예술가가 한때 록스타들의 영역이었던 팬과 찬사, 관심, 돈을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현대미술 세계가 끝장난 것은 아니지만, 뱅크시는 거의 혼자 힘으로 새로운 관람객을 위한 새로운 예술세계를 만들어서는 기성 예술세계와 나란히,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 세계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 246쪽 예술은 때와 장소에 의해 기호화된다. 때와 장소라는 두 요소는 관객이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닌지를 결정하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미술관에 방문한 관객은 그곳에 걸려 있는 그림을 ‘예술’이라고 인지한다.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주는 신뢰다. 길거리 아무 벽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그림은 낙서일 수 있지만, 같은 그림이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는 ‘작품’이 된다. 대개 관객들은 미술관에 방문하면 그곳에 전시된 작품의 진위나 수준에 대해 크게 의심하지 않고 예술로 받아들인다. 2003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의 한 전시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벽면에 붙인 후 자리를 떠난다. 그가 사라지고 난 후 벽면에 남겨진 것은 그의 그림. 며칠 동안 그 그림은 테이트 미술관에서 ‘전시’된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에서는 허락한 적 없는, 심지어 그 존재조차 인지하지도 못한 그의 작품을 벽면에 전시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진지하게 감상한다. 이 실험적 퍼포먼스를 행하여 유명해진 사람은 바로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Banksy)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이 상황을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여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그는 스트리트 아트와 순수예술 사이에 예술성의 차이가 있기보다는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부여하는 맥락이 해당 작품을 예술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감상할 명분을 주었다고 믿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해 낸 셈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의 일은 때로 작품을 창조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술가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작품에 영향을 미칠만한 신화를 창조하기도 한다. 예술의 가치는 기존 예술계에서 정한 미학적 규칙에 의해 판단되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 규칙을 완전히 깨부숨으로써 아티스트의 예술적‧경제적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떤 예술을 평가할 수 있는 완벽하게 객관적인 기준은 실로 존재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바라는 현대미술 작가라면 자신의 신화를 담은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뱅크시는 매우 성공적으로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그는 환경 문제, 반전(反戰), 동성애, 공권력 비판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그만의 친숙한 표현 양식으로 전달하며 꾸준히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도, 정작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철저히 숨김으로써 오히려 그의 정체에 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태껏 그의 본명조차도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오히려 기관이나 공무원 등과 협업할 때 중요한 계약 조건 중 하나로 그의 신원과 관련된 사항을 절대 외부에 누설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는다. 정체를 숨기면 숨길수록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책의 저자인 엘즈워스-존스는 이러한 뱅크시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흩어져 있는 뱅크시의 정체에 대한 정보들을 정리해 보여주면서도, 막상 그의 익명성을 밝히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오히려 모두가 유명해지려는 이 시대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감추는 전략으로 유명해진 그의 역설에 더 집중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이 책은 뱅크시의 예술적 여정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그의 행보를 함께 따라가면서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간 뱅크시가 해온 활동들이 일관된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표현해왔음을 알게 되면서도, 동시에 치솟는 상업성 때문에 반체제적 성향의 메시지가 희석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그의 작가로서의 혼란과 고민을 짐작하게 된다. 또한, 뱅크시의 작품이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이해될 만큼 ‘친숙’해서 새로운 관람객과 예술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 반면 그의 작품에 대해 논하고 이야기를 끌어갈 만한 이론적 바탕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약점이자 한계임을 지적받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영국의 평론가 조너선 존스는 일찍이 뱅크시의 작품에 대해 “터너상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라고 표현하면서,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대표적 미술상인 터너상에 선정된 작품의 예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좋아할 만한 ‘쉬운’ 작품임을 비꼰 바 있다. 저자 역시 뱅크시의 작품을 설명할 이론이 없다는 것은 그의 예술이 가지는 한계임을 인정하면서도 ‘뱅크시 자신은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덧붙인다. 이 책은 뱅크시의 그러한 빈칸을 채워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뱅크시의 작품들과 다양한 사진들은 독자들에게 뱅크시의 작품을 경험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확인시켜주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책은 예술계의 규칙과 위계를 거슬러 ‘거꾸로’ 걸어간 뱅크시의 예술 여정을 함께 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