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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320.09-21-2

- 서명: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첫걸음

- 편/저자: 그레임 개러드, 제임스 버나드 머피

- 발행처: 다산초당(2021-06)

서평
 왜 정치를 하는가? 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서평자
 윤비,성균관대학교 교수
발행사항
 555 ( 2021-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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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부 고대
2부 중세
3부 근대
4부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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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활동은 권력에 정의라는 개념을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시행하지 않거나 시행할 수 없는 정의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정의가 길을 이끌어주지 않는 권력은 또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전자는 그저 환상일 뿐이고 후자는 폭력에 불과하다. 정의는 옳은 일을 알려줌으로써 법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권력은 법 준수를 위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법에 강제성을 부여한다. (p. 10) 만일 출판사에서 내게 그레임 개러드(Graeme Garrard)와 제임스 버나드 머피(James Bernard Murphy)의 『처음 읽는 정치철학사』(원제: How to Think Politically)의 광고 포인트가 무엇인지 조언을 부탁한다면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겠다. 물론 주제의 무게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도 미분과 적분을 영화 한 편 보듯 배울 수 없듯이, 이 책 역시 독자들에게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다만 그런 노력과 인내의 양이 그리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쉽고 재미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사상가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소개, 다양한 삽화와 핵심 요약이 곁들어진 본문은 정치나 시사에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술술’ 읽을 정도로 평이하다. 저자들은 모두 잘 알려진 해외 대학의 정치학 교수지만 이 책에서 정치철학에 대해 뭔가 큰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은 아예 접은 것 같다. 한 사상가의 생각 전반을 보여줄 의도는 처음부터 없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철학과 정치의 관계 및 그 핵심에 있는 ‘정의’ 개념 딱 한 주제에 집중했다. 그것도 큰 글씨로 쓰인 단 일곱 쪽으로 결말짓는다. 논쟁적이지도 않으며 정교한 학설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흔히 ‘따분하고 어렵다’고 여겨지는 고대 말, 중세의 사상가나 헤겔 같은 사상가의 복잡한 주장조차 쉽게 삼킬 수 있는 케이크처럼 여겨진다. 저자들이 이런 ‘쉽게 먹여주기’ 전략을 택한 것은 이 책이 초보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수도, 기자도, 은행원도 다른 누구라도 초보자를 위한 책을 쓸 수 있다. 사람들의 교양 수준을 높이기 위해, 교육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은행 잔고를 늘리기 위해 혹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정치학 교수가 초보자를 위한 책을 집필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누구나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치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갖기를 바랐다. 독재를 옹호하는 자를 제외하고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날카로운 시각을 기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저자들이 초보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정치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를 권력을 둘러싼 노름판으로 보는 태도가 마치 역병처럼 번져, 심지어는 ‘쿨’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하는 (미국)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정치혐오가 이 사회를 아래로부터 파먹고 있다. ‘정치를 혐오함’을 내세우는 야심가들이 벼락 정치 스타가 되고, 국가의 행정이 시민의 무관심 속에 관료들의 손에 내맡겨지는,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상황을 낳는다. 이러한 정치혐오 시대의 한 가운데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저자들은 정치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으며,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정치는 언제나 특정 집단의 편의와 이익, 그리고 타협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지저분한 비즈니스”였음을 저자들은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를 향한 이러한 일반적인 시선은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진실 그 자체는 아니다”(4-5쪽)라고 강변한다. 정치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이미 정치혐오에 빠진, 혹은 빠질지도 모르는 동료 시민들을 향해 바로 이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저자들은 초보자들을 위한 정치철학사를 썼다. 서술이 쉬울 뿐 아니라 다루는 사상가의 범위가 넓다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중세와 근대 및 현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서양사상사의 레퍼토리에 유교권의 공자, 이슬람권의 알 파라비와 사이드 쿠틉, 유대교 전통의 마이모니데스, 힌두교 전통의 간디 같은 사상가들을 곁들여 부족하나마 서구 밖의 전통에도 눈길을 주었다. 마르크스, 마오쩌둥 둥 사회주의 사상가들도 등장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고려도 엿보인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마사 누스바움, 존 롤스, 아르네 네스와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를 통해 현대 정치이론의 전개에도 신경을 썼다. ‘들어가는 글’과 ‘나오는 글’은 특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저자들은 목표와 가치가 빠진 채 단지 권력 쟁탈전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날 정치의 문제를 비판한다. 정치는 분명히 권력을 위한 경쟁이고 싸움이지만, 적어도 그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사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이 책에서 풀어놓는 30인의 정치사상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고 저자들이 우리에게 내미는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