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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구기호: 181.19-20-5

- 서명: 한국의 정체성

- 편/저자: 탁석산

- 발행처: 책세상(2020-07)

서평
 한국적인 것, 현재성과 전통
서평자
 강경현,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조교수
발행사항
 543 ( 2021-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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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제2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제3장 정체성 판단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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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의미에서가 아닌, 또한 한국에서의 철학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드러내는 철학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 없이 한국철학이다. (p. 132) 21년 전 저자는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한국의 정체성』 초판을 통해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물었다. 이 물음은 변방으로서의 한국, 약소국으로서의 한국, 문화적 후진국으로서의 한국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 자신이 이 책을 최인훈의 『회색인』에 대한 응답이라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 보인다. 저자는 ‘한국’이라는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특성으로 한국어의 사용을 꼽지만, 한국의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여전히 막연해 보인다. 따라서 저자는 문학, 건축, 음악, 미술, 의상, 영화, 서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라는 집단의 특성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한국의 정체성과 관련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흰색 콘크리트로 덧씌워져 복원된 남대문과 창덕궁의 기와로 향한다. 그것은 세계화라는 공허한 구호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보편을 추구하다 도달한 어설픈 타협의 산물일 뿐이다. 이제 저자는 한국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 지금 여기의 각각의 것들에 구현되어 있는 한국적인 것을 발견하는 작업에 착수하려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적인 것은 고유성과 창의성을 갖는다. 한국적인 것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고유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원(始原)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그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격조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외래 문화를 수용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창의적이기도 하다. 고유하고 창의적인 한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모든 논의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출발해야 하고(현재성), 대중과 유리되지 않고 한국의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문제여야 하며(대중성), 한국이라는 집단의 주체적 성향이 반영되어야 한다(주체성).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것 가운데 가장 확연한 것은 샤머니즘이다. 저자가 보기에 샤머니즘은 한국 문화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맞고 한국인이 선호하는 샤머니즘에 대해 더욱 깊고 넓게 연구할 때 한국의 문화를 꿰뚫고 있는 한국의 정체성은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이 책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세 요소 가운데 핵심은 바로 ‘현재성’이다. 물론 그것이 다수의 공감과 공통된 성향 속에 놓여 있어야 하겠지만, 이 현재성은 한국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것으로 만든다. “한국적인 것”을 구성해내는 데 있어 그 유래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또 그럼으로써 창조적 수용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재발전, 재구성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현재성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저자는 ‘전통’에 대하여 두드러진 경계의 시선을 드러낸다. 정확히는 현재성을 상실해 과거로서만 존재하는 전통이다. 저자는 “한국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만약 현재성과 대중성, 주체성을 갖춘 철학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한국어를 통해 사유되고 표현된다면, 그것은 저자에게서 한국의 특수한 형식과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한국철학”이라 명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 그리고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조선 유학이다. 이 책에서 조선 유학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다. 그것은 공자의 본래 의도로부터 퇴락한, 사회 통제와 인간 억압의 도구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유학에 대하여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의 기준을 다시 찬찬히 적용해볼 수는 없을까? 조선 유학이 “집단의 기억”(한형조, 『왜 조선 유학인가』, 문학동네, 2008, 11쪽)으로서의 전통으로 해석되고, 지금 한국이 마주한 문제를 사유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철학적 자원으로 역할을 할 가능성은 저자의 시야 위에서도 충분히 찾아질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조선 유학이 당대에 직면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고민하고 진단하였으며 처방을 내렸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