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촉잔도(蜀棧圖)〉는 오랜 기간 이백(李白, 701- 762)의 「촉도난(蜀道難)」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이해되어 왔다. 〈촉잔도〉에서 촉도난의 분위기는 크고 작은 산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과 그 속에서 이동하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심사정의 관지(款識) 에서 ‘촉잔(蜀棧)’이라는 두 글자와 부합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자아내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촉잔도〉를 보면 촉도난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이미지가 발견된다. 이 이미지가 바로 〈촉잔도〉의 후반부에 삽입된 성도(成都)이다. 성도에는 성벽과 중충 누각으로 된 성문, 다각형 지붕의 중층 건축물 2채와 무수히 많은 가옥, 성벽 밖 강가에 정박해 있는 배들 등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심사정이 이 그림을 그리면서 성도에 상당한 공력을 들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촉잔도〉는 8m에 해당하는 장대한 수권(手卷)으로 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험난한 산수의 경관이 표현되는 데 적합한 그림 형식은 축(軸)이다. 그런데 수권은 긴 강을 따라 전개되는 평탄한 산수의 경관이 담기기 적합한 그림 형식이다. 중국의 화가는 촉도난을 주제로 한 그림을 축 형식으로 제작하였다. 〈장강만리도(長江萬 里圖)〉와 같이 촉 지역 그 자체가 주제로 다루어질 때 수권의 형식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심사정의 〈촉잔도〉는 가로로 긴 화면에 촉도난이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면 심사정은 왜 수권의 화면 위에 상충하는 촉도난과 성도를 함께 그렸을까? 필자는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로 성도를 주목하였다. 성도는 문학 소재인 불여귀의 시상(詩想)이 태동한 장소이다. 불여귀의 시상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時代) 촉(蜀)나라의 망제(望帝)인 두우(杜宇)가 도성 즉 성도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기원(起源)하였다. 떠나는 이를 향한 슬픔과 되돌아오길 바라는 감정이 불여귀에는 함축되어 있다. 두우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중국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상황과 그 심회를 불여귀에 투영하였다. 심사정 역시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심사정은 폐족(廢族)이라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고싶어 했다. 〈촉잔도〉에 나타난 성도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저술한 문학작품과 마찬가지로 심사정이 자신의 삶과 소회를 투영한 불여귀의 소재로 추정된다. 아울러 〈촉잔도〉의 수권 형식은 험난한 촉도(蜀道)를 지나 성도에 도달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심사정의 〈촉잔도〉에는 불여귀의 함의가 내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