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대는 국내외 정세의 변화 등으로 북벌론이 다시 제기되면서 서북방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방어체계가 정비되던 시기였다. 숙종은 무신의 확보와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萬科를 시행하고, 朔試射와 武臣 賓廳講書 등을 자주 시행하였다. 이와 함께 숙종은 경연에 무신을 참여시켜 서북방이나 수도권 주변의 방어체계 등에 관한 상황과 문제를 직접 파악하고자 하였다. 무신은 자신의 역임한 지역의 상황을 보고하면 보완점이나 개선점 등을 보고하였다. 이는 경연에 참여한 대신이나 병조 등의 군사 관련 담당자와 논의되었으며, 병조와 비변사를 통해 업무가 처리되었다. 숙종은 무신을 경연에 참여시킴으로써 무신과의 소통을 통해 국가 방어체계의 실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방어체계를 정비해나갈 수 있었다.
숙종대 무신의 경연 참여는 이전 왕대에 비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숙종대 경연에서 무신은 총 1,940회(100%)의 경연 가운데 834회(42.9%)의 경연에 참여하였다. 무신의 경연 참여가 주강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총 1,472회(100%)의 주강 가운데 834회(56.6%)로 절반 이상의 주강에 참여하였다. 이는 효종대, 현종대와 비교하였을 때 월등하게 많은 참여 횟수이다. 또한 834회의 경연 참여 가운데, 참여한 무신은 총 856명(중복 포함)이었다. 중복을 제외하면 모두 244명의 무신이 숙종대 경연에 참여하였다.
무신의 경연 참여는 국왕과 무신이 대면하여 국방 문제 또는 지역의 폐단 등에 대해 직접 논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국왕이 무신에게 명령하거나 국왕과 문신의 논의 사항을 전달받은 일방적인 소통체계를 벗어나서 무신이 국왕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국정을 논의할 수 있는 양방향 소통체계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숙종은 문신 중심의 국정 논의에 무신을 참여시킴으로써 문신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숙종대는 문신 내부의 붕당을 중심으로 하는 갈등이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숙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환국을 통해 특정 붕당의 세력화를 견제하면서 국왕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신을 경연에 참여시키고 지방 행정이나 군사 업무 등의 국정 논의를 함께함으로써 문신 중심의 정치 구조에 변화를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