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조선후기 노비와 상전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경제적인 현실과 사회적 배경의 측면에서 변화 실상을 추적했다. 임진전쟁(임진왜란)과 병자전쟁(병자호란) 이후 17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경국대전 체제의 조선 사회에서 상전과 노비는 각자의 경제적 기반에 대한 이해를 인정했다. 17세기 중엽 이후 기상(記上)을 통한 노비 자산에 대한 상전의 자기화 그리고 ‘충’을 강조하는 성리학 중심 사회질서가 공고화하였다. 이에 따라 노비와 상전은 주종관계를 정확하게 확립하면서 경제적 측면에서도 상전의 노비에 대한 조처는 시혜의 가치로 해석되었다. 18세기 이후, 서얼허통과 공노비 혁파 논의 속에서 상전에 의한 노비의 강력한 통제에 현실적인 한계가 발생했다. 외거노비 방량(放良) 사례에서 보듯이 상전과 노비는 현실을 인정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었다. 노비와 상전의 경제적 이해는 18세기 전반까지 조선 전기적 유풍에 따라 각자의 재산을 인정하는 호혜적 관계가 이었으나 18세기 중엽 이후 상전 중심의 사회적 관행에 따라 상전의 노비에 대한 행위는 시해로 전환하였으며, 19세기 노비제의 해이에 따라 상호 현실적 상황에 타협하는 지혜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