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의 과정과 개별 전투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본고에서는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게 되는 기점이 되었던 칠중성 전투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라는 당이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고구려고지에서 고구려부흥군을 지원하며 공세적으로 영역화를 시도하였으나, 고구려고지에서 관방체계를 정비할 수 없었다. 결국 신라는 672년에 평지에서 벌어진 석문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방어적인 입장으로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는 고구려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임진강-한탄강-추가령구조곡에서 치밀한 관방체계를 구축하였다. 신라는 기존 방어선을 보강하면서 왕경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와 왕경 주변에도 방어시설을 확충하였다. 675년 2월 칠중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신라는 당에게 피해를 입었으나 성을 함락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9월 천성전투에서 당군의 상륙을 저지하면서 당의 주력군은 매소성에 묶이게 되었다. 결국 당군은 신라의 공격을 받고 매소성에서 퇴각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은 신라에게 넘어왔다. 당은 칠중성을 신라 북방대진으로 인식하였다. 신라는 칠중성에서 당군의 남진을 저지하였고, 당군은 신라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남진하는데 실패하였다. 신라가 고구려에 대항하여 구축한 관방체계는 당의 공세를 막아내는 기반이 되었고, 그 중심에 칠중성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