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광서제의 즉위 이후 청의 변방 및 조선 정책에 대해 해방론의 맥락에서 해석해 보고 자 시도한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19세기 말 청은 본토의보전을 목적으로 본토의 문호(門戶)가 되는 속국과 속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 문호정책(門戶政策)과 인식은 청의 각료들은 청 내부뿐만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고려한 것으로, 청 조정이 조선과 같은 속국과 대만 등 속지를 보전하는 방안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정책이 당시 청 조정 내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었던 해방론(海防論)의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당시 청 조정의 문호정책은 청 조정의 내부 정치 관계와 관련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870년대 청의 속국 정책과 그 논의를 살펴보면, 특히 조선과 대만 두 지역을 각각 “동북(東北)의 문호(門戶)”와 “남양(南洋)의 문호(門戶)”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청의 중요한 속국이자, 내정에 자주가 보장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880년대 이전 청은 조선이 서구 국가와의 통상과 교섭을 권도하면서, 조선이 자연스럽게 균세지법(均勢之法)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국가의 지위를 보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선에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 조선에서 내란이 연달아 발생하게 되면서, 청조정은 기존의 속국 정책을 버리고 군대를 파견하고 내정에도 간섭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