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20~1925년 『동아일보』의 유통망 확대와 신문의 유통과정을 추적하고, 이 시기 동아일보 지국장 경력자들이 본사가 주도한 문화운동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밝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는 지역의 유통망 확보를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창간 당시 지국 25개에 불과했던 『동아일보』의 유통망은 1925년 말에 이르면 지국 124개, 분국 182개까지 확대되었다. 높은 문맹률과 빈곤으로 인하여 1925년 『동아일보』의 가정당 구독률은 1%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당시 식민지 조선에는 신문을 온 마을이 돌려 읽는 윤독과 문맹자를 위해 식자가 글을 읽어주는 낭독이 독서의 일상적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아일보 본사가 전국 곳곳에 유통망을 설치했기 때문에 이러한 풍경은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경성에서 인쇄된 『동아일보』는 본사 → 지국 → 분국의 체제 아래 전국에 유통되었다. 지국장은 직할 지역과 분국의 관할 지역 내 신문 유통을 책임졌다. 교통이 좋은 지역의 『동아일보』 구독자들은 당일의 신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21년의 영주같이 유통의 말단에 위치하고 철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나, 1925년의 제주도처럼 도서지역의 『동아일보』 구독자들은 당일 발행되는 신문을 볼 수 없었다. 벽지에 거주하는 『동아일보』 구독자들은 신문을 받은 날짜와 그 신문의 발행일 사이의 간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1920~1925년 사이 동아일보 지국장 경력자들의 본사 주도 문화운동 참여에 대해서는, 물산장려운동에 21명, 민립대학설립운동에 64명이 참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20~1925년 사이 확인되는 동아일보 지국장 경력자가 223명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소수 인원만이 본사 주도 문화운동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