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격이나 법인격으로 의제하거나 그것과 등치시키려는 시도야말로 인간을 (법)철학적 견지에서 이해하고 규정하기 위한 유력한 방식의 하나였다. 그래서 적어도 근대 이후, 인격과 법인격은 세계에 대한 인류의 인식체계나 규범체계를 이루는 일차적 존재자(primary entities)이자 인류 보편사의 거시적주체로서 역할을 해 왔다. 달리 말해, 근대적 인식과 실천의 체계로서 인간의 지식체계와 법체계는 인격으로 대별되는 특별한 존재자인 “인간”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격이나 법인격일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관심과 논의 양상도 위와 같은 지적·실천적 배경하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논의에 뛰어든 많은 논자들은 ‘인격’과 ‘법인격’이 ‘인간’을 연원으로 하고 둘 간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래서 그들은 ‘인격’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형이상학적, 도덕철학적, 종교적, 자연적 특질을 그 내용으로 하는데, 인공지능에게는 그러한 인격이 결여되어 있기에, 인공지능에게는 법인격을 부여·인정하는 것 역시도 불가하다고 주장해왔다. (철학적 부정론) 이와 반대로, 어떤 논자들은 ‘인격’과 ‘법인격’ 간의 관계에 대한 앞서와 마찬가지의 논거를 취하는 한편 인공지능에게도 그러한 인격에 해당하는, 혹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질(예: 기능적 자율성)이 있기에, 인공지능에게도 법인격을 부여·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철학적 긍정론) 이에, 필자는 (이러한 논쟁 자체에 답을 하기보다는) 그러한 논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 연원이 무엇인가를 몇 가지로 분석해 냈다. 첫째, 이 논쟁을 주요 논점별로 추출하고 분석해 냄으로써, 이들 논점이 논쟁 속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고 뒤섞인 데다 충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이 그 한 연원임을 밝혔다. 둘째, ‘인격’과 ‘법인격’이 서로 간에 항상적 연관이나 필연적 연관과 같은 특별한 관계 하에 있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으나, 이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것임을 밝혔다.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을 부여·인정할 수 있는지를 전통적으로 인간에게 부여·인정된 것과 같은 ‘인격’에 의거해서 판단해야 할 필연적·선험적 근거는 없으며, 따라서 양 진영의 논변은 건전한(sound) 논변이 아니다. 셋째, 상기 철학적 논거에 입각한 긍정론과 부정론과는 별도로, 법인격 여부는 법이 정하기에 달린 문제라는 법률학적 논거에 의거해서 “법률학적 긍정론”과 “법률학적 부정론”을 고려할 수 있으며, 이러한 양론은 별도의 전망을 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