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실증주의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법실증주의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로 인하여 법실증주의는 종종 잘못 이해되고는 한다. 그러한 이해 가운데 하나는 법실증주의가 법관에게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판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법실증주의는 법관은 법문언 그대로 적용하는 ‘포섭 기계’일 뿐이며 그러한 법적용의 결과가 현저하게 부정의하더라도 법관이 재량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해는 법실증주의에 대한 오해이다. 법실증주의는 법의 개념과 효력이 도덕과 분리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며 법을 적용할 때 법문언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아니다. 법실증주의가 어떤 이론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전혀 다른 판결이론과 연결될 수 있으며, 실제로 법실증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판결이론을 제시한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 글은 판결을 둘러싼 법실증주의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법실증주의의 창시자이자 공리주의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인 벤담(J. Bentham)의 판결이론을 분석한다. 이러한 탐구는 법실증주의가 처음부터 기계적인 판결과 무관했으며 기계적 판결의 부당한 결과를 경계하는 이론과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문제는 벤담의 판결이론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벤담이 법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특성으로 제안하는 안정성, 단순성, 공개성을 중심으로 가장 타당한 해석이 무엇인지 고찰한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모두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해석은 입법자가 법의 내용을 확정하도록 하지만, 법문언 그대로 판결할 경우 부정의한 사건이 있을 수 있으므로 법관은 그런 경우 법문언대로의 적용을 중단하고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 및 개정의 필요성을 정리하여 입법자에게 보고 및 문의하여 법을 개정하거나 적절한 해석이 무엇인지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