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고려말 ‘무위(無爲)’의 이상정치론이 제시됨에 따라 나타난 형정이론의 변화에 대해 다룬다. 구체적으로 무위정치의 출현 이후 이전까지와 다른 변화된 유교적 형정 이론이 나타났고, 그것이 정도전에 의해 정리되었음을 밝힌다. 고려 말 유교 지식인들은 사회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성리학의 문제의식을 적극 활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이색 등은 무위(無爲)와 같은 정치적 이상사회론을 제시하였다. 무위의 이상정치론은 제도적 수단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피지배층인 민들도 교화시켜 자연히 따르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도출하였다.
무위의 이상정치론이 전면적으로 등장함에 따라, 덕치와 형벌을 선후관계 등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당시부터 덕에 의한 통치를 중시하기 시작했음과 동시에, 당시부터 형벌의 위상이 명확히 설명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덕치를 우선시하고 형벌을 뒤로하는 논어의 구절이 강조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교적 형정 이론은 정도전에 의해서 더 구체화되었다. 정도전은 범죄자를 관대하게 처벌하여 범죄자들의 뉘우침을 유도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의 ‘자신’과, 민들에게 국가가 정한 바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금령을 알게 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금’을 강조하였다. ’자신‘과 ’지금‘은 모두 형벌을 지배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형벌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형을 집행하지 않는 우회적인 수단을 강구한 결과 나온 개념이었다. 이러한 고려 말의 유교적 형벌 모색은, 조선 초 교화·형벌을 둘러싼 실질적인 제도적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 이념적 근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