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음식의 역사’를 다룰 때 직면하는 ‘권력’의 문제를 역사인류학・역사민속학・사회사적 연구의 시각을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나는 음식과 권력의 상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맛의 취향, 정치와 식량, 몸과 영양, 식품체제 등의 주제들을 다룬다.
첫 번째의 주제는 맛의 취향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맛 취향을 ‘생각하기에 좋은(good to think)’ 음식이라고 여기지만, 이러한 인식 역시 공동체의 지배적인 권력에서 나온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도시인들은 식품공장, 유통업체, 외식업체 등을 통해서 식재료와 음식을 구매해서 먹는다. 따라서 오늘날 사람들의 맛의 취향은 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두 번째 주제는 정치와 식량의 상관관계이다.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와 공급은 동아시아의 전근대 왕조가 견지한 중요한 통치 이념의 하나였다. 조선시대의 금주령은 주곡인 멥쌀을 식량이 아닌 다른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1960~70년대 제3공화국 정부가 전개한 분식장려운동도 주곡 확보를 위한 정책이었다. 국가가 펼친 특정 식량에 대한 통제는 국민의 입맛을 바꾼 결정적인 권력이다.
세 번째 주제는 국가 권력이 통제한 국민의 몸과 영양에 관한 것이다. 1960~70년대 제3공화국이 펼친 각종 영양 정책은 미국식 영양학에 근거한 권력의 규율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의 식단은 육식화(meatification)의 과정을 밟았고, 이 때문에 곡류 소비가 감소했다. 국가의 몸과 건강에 대한 통제와 규율이 식단의 구성을 바꾸었다.
네 번째 주제는 다국적 식품기업에 의한 식품체제에 관한 것이다. 식품기업과 식재료의 대형 유통기업은 정교한 마케팅 기법을 통해서 세계적 먹거리사슬 구조에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식품산업이 펼치는 식품정치(food politics)는 정부의 감독 기능을 약화할 정도로 강력하다.
오늘날 식품의 생산, 유통, 소비는 식습관의 영역을 넘어 이미 정치와 경제의 권력 영역이 되었다. 나는 본고를 통해서 한국의 인문학과 사회과학 학계에서 음식의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