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세기 후반 지방관 이헌영(李𨯶永)이 거행한 향음주례(鄕飮酒禮)의 경위를 개괄하고, 그것의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향음주례는 술을 마시는 행위를 통한 지방 세력의 교화와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고대 중국에서 정립된 유학의 향촌 의례 중 하나로서,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에서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권장하였다. 이헌영은 외교관을 역임하며 근대 문물을 전면에서 목도했으면서도, 한편으로 부안현감(扶安縣監)・정주목사(定州牧使)・의주부윤(義州府尹)・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등 지방관으로 재임 할 때마다, 어김없이 향음주례를 비롯해 각종 향례(鄕禮)를 거행하였다. 이때 향음주례의 절차는 정조 연간 반포된 『향례합편(鄕禮合編)』을 기본으로 삼았지만, 부임지의 습속(習俗)과 규모를 감안하여 생략하거나 변용하였다. 향음주례에 참여하는 구성원도 부임지의 성격에 맞추어 역할과 규모를 정하였는데, 당시 지역에서 명망 있던 사대부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한편으로 이헌영의 향음주례에는 19세기 후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도 반영되어 있다. 새로운 문물의 유입과 봉건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헌영은 무엇보다 내부 질서 확립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지방관이 주도하고 지역의 사대부 가문이 참여하는 향음주례를 거행함으로써, 전통적인 질서를 확인하고 이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