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무과 시취에 보이는 무예의 구성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첫째 여말선초에 군사제도와 관련된 논의를 분석한 결과 무예인 기사(騎射)를 중심으로 중국의 병학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둘째 조선 초에도 군제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된 군례화의 논의안에서 군사훈련, 인재선발 방식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기병 중심의 무예에 더하여 병법이론과 이에 근거한 진법훈련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병법의 이론은 무과에 강서(講書)의 형태로 구성되었고, 실제 시험을 보는 무예는 보병과 기병과 관련된 실기 능력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기사(騎射), 기창(騎槍), 격구(擊毬)와 보사(步射)의 무예로 『경국대전』에 정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