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의 법학계에 등장한 법현실주의자들은 법규범이 구체적인 사안에서 논리적, 연역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으며, 이러한 탐구를 통해서 그들은 법에 있어서 비결정성의 문제를 중시하기 시작하였다. 법현실주의자들은 “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홈즈의 주장을 넘어서 법전의 법(law in books)과 실제의 법(law in action) 간의 괴리에 주목하면서 이를 밝히기 위해서 사회과학적 접근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만일 개별적인 사안에서 법관이 법규범으로부터의 연역적인 추론이나 기존의 권리에 근거해서 판결을 내릴 수 없다면, 그 판결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법현실주의자들은 사법판결이 이끌어내어진 근거들을 분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의 세밀한 탐구를 통해서 법규범의 비결정적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서 이들이 제시한 것은 법 외부에 있는 요소들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법사회학적 탐구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비판법학은 사법판결의 분석에 집중하였으며, 법의 비결정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법현실주의자들과 달리 비판법학자들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형성되었던 좌파 이론이나 사상에 전도되어 있었으며, 자본주의 사회 전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비판법학자들은 미국의 법원이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는 사법판결에 대한 비판이 미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어떠한 의의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펼쳤다.
1980년대 중반 법사회학자인 수잔 실베이는 자신의 논문에서 법사회학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고, 동시에 비판법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실베이가 법사회학 관점에서 제기한 비판법학의 딜레마를 살펴보고, 실베이의 지적에 대해서 반론을 펼치고 있는 던컨 케네디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비판법학의 창시자이자 선봉에 섰던 던컨 케네디의 입장을 통해서 사법판결의 분석 및 비판이 사회이론에서 어떠한 위상을 점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사회이론에서 제기되었던 주제들과 어떠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수잔 실베이가 제기하고 있는 기존의 법사회학과 비판법학의 딜레마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실베이는 법현실주의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법사회학과 비판법학이 비판적 관점에서 법현상을 분석하고 사회에 팽배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타파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이상주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을 통해서 실베이는 법사회학이 새롭게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비판법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사법판결비판에 전념해온 비판법학이 사회이론의 거대 전통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를 밝혀보려는 던컨 케네디의 입장과 주장을 다룰 예정이다. 특히 케네디는 미국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법사회학과 비판법학이 법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특히 실베이가 지적하고 있는 비판법학의 문제점에 대해서 반론을 펼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법사회학과 비판법학이 어떻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관점의 차이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4장에서는 사회이론의 거대 전통에 속하는 마르크시즘과 비판법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법에 대해서 어떠한 관점의 차이를 갖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케네디의 논증을 다루고자 한다. 특히 비판법학 내의 비합리주의자들은 토대/상부구조의 구분, 경제결정론 및 이데올로기 관념에 대해서 마르크시스트의 이론적 전제와 관점을 거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법에 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마르크시스트와 비판법학자들이 왜 그렇게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를 보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서구의 근대 이후에 형성되어온 사회이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과연 비판법학계의 비합리주의적 관점이 어떠한 측면에서 사회이론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5장 결론에서는 앞에서 다룬 내용들 중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쟁점들을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