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철학, 그리고 법은 분리 불가능하고 보완적이며 끊임없이 상호 교차하는 필연의 영역이자 존재자들이다. 특히 정치와 법의 자기성찰의 방법으로 정치철학과 법철학은 자신의 고유한 체계의 정당성과의 비판의 도구로서 이데올로기의 전선(frontier)을 형성하지만, 오랜 시간 속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삼아 온 역사가 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철학 혹은 법철학은 민주주의와 법, 권리와 법치국가에 대한 국가의 운영자들이 논의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성찰을 더 밀고 나가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요컨대 정치철학은 고전적인 위대한 학설과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국가들의 일상적인 정당화 형태들 사이의 소통을 확고하게 할 뿐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를테면 정의의 정치철학적 맥락과 지평을 보다 광범위하게 사유하면서, 정의를 법의 문제로 구체화하는 데까지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마침내 정치철학자 롤스가 정치철학을 도덕철학과 구별해 내고, 정의를 정치철학의 고유한 주제로 삼으면서 사유되기 시작한다. 한편 정의는 법의 오랜 역사에서 법의 이념이자 가치로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에 정치철학은 정의를 매개로 또는 정의를 하나의 방법으로 법에 실천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본 논의에서는 정의의 형식으로서 평등의 요청이 법의 일반화(라는 형식)에 기여하는 방법과 근거를 논증함으로써 법에서 정치(철학)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편견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통해 법의 일반화가 갖는 기능을 긍정적으로 모색하고 법의 일반화가 평등이라는 정의 이념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소개함으로써 평등이라는 정의의 형식이자 가치이념이 어떻게 법에서 작동하는지를 검토했다. 법철학은 정의의 형식, 그리고 형식의 효력과 체계정당성을 비판하고 이론화하는 법학의 분과고, 정치철학은 정의의 실질과 정당성을 규명하고 이론화하는 정치학의 분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의에서는 ‘정의(justice)’ 개념이야말로 정치(철학)가 법(철학)과 만나는 매개이자 방법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비로소 ‘법에서 정치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소박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