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미증유의 대지진이 일본 관동 지방을 덮쳤다. 관동 지방은 가옥 붕괴와 화재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 이후의 혼란 속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과 700여 명의 중국인은 일본의 군대·경찰·자경단 등에 학살당했다. 사건 직후 중일 양국의 민간 유지들이 증거수집에 나섰고 중일 양국 정부도 이 사건을 둘러싸고 외교교섭을 벌였으나 일본 정부의 은폐정책과 중일 정국의 급격한 변화로 중국인 학살사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1970년대 들어 중일 학자들의 자료 발굴을 통해 비로소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고 1990년대부터 중일 양국 시민들에 의한 피해자 유족 지원 활동이 전개되었다. 본고에서는 관동대지진 때의 중국인 학살사건을 개관하고 192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100년 동안 중일 양국 학자와 민간 유지들의 진상조사와 추모활동을 상세하게 정리하여 관련 분야의 연구를 심화시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