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은 화가, 특히 젊은 미술학도들에게 단순한 지진 피해에 그치지 않고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오감(五感)을 자극하여 조선인 학살이라는 배타적 폭력을 체험함으로써 인생관과 세계관이 무너지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본고에서는 주로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의 조선과 일본의 청년화가들에게 주목하여 지진이 그들에게 무엇을 각인시켰는지 고찰하였다.
지진 후 자경단을 그린 작품이 다수 등장했는데 이러한 도상(圖像)은 조선인 학살 문제를 왜소화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청년화가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 미술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폐허 속에서 새로운 미술운동이 일어났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이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생명의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