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석굴암 조각에 관한 양식적인 분석을 통해 창건연대를 재검토한 것이다. 필자는 고신라(古新羅)와 신라 중대는 물론, 인도 및 동아시아 조각을 함께 검토하여 석굴암 조각의 양식적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석굴암의 원형을 규명하고자 했다. 석굴암은 완벽하게 계획된 기념비적 불당이므로 전체적인 건축설계안과 공간에 대한 구상이 먼저 수립되고, 중심 예배상인 본존불과 주변 부조 조각을 염두에 둔 총체적 플랜을 만들어 실행에 옮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굴암의 창건과 조각 제작은 별개로 이뤄진 일이 아니므로 일부 조각의 특징으로 창건연대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각 수법과 양식으로 보면 석굴암은 신라 조각의 체계적인 발전의 결과이며, 중국에서 유입된 화본을 보고 그대로 조성한 것이 아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에서 오랜 기술의 숙련과 조각가의 훈련이 없이 석굴암 조각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입체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이상적인 미의 구상 의지가 함께 발전되어야 비로소 구현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주실 부조는 굴불사 사면석불 조각이나 경주 남산의 다양한 석불, 마애불 조상과 같은 다양한 실험 단계를 거치면서 이뤄 낸 결과물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주실 부조는 기법의 숙련이 바탕에 깔린 중대 신라 조각사의 내재적 발전이면서 정점에 이른 예술적 성취이다.
같은 시기 중국의 많은 조각과 비교하기 어려운 석굴암 조각에 나타난 비중국적인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보경사 칠보대의 성당 시기 조각이나 일본 텐표시대 조각과 동일한 양식을 보인다고 하기 어려운 것은 석굴암 조각에 서역적, 인도적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석굴암 연구에 있어 건축적인 특성은 인도 석굴에서 구하고, 조각은 중국 불상과 비교하는 이원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식 목조건축이나 석굴사원에서 석굴암 건축의 연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과 조각을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에서 석굴암을 파악해야 하며, 부분적이거나 단편적인 검토만으로는 처음 건설 당시의 구상과 조성 방식, 기본적인 건축의 방향과 조각의 구성원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건축의 원리, 본존불과 부조의 조각 기법과 배치 계획안들을 동시에 검토하여 석굴암 설계 당시의 기초 구상과 원형 복원에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