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표는 광주 이씨의 사례를 통해 족보 편찬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둔촌 이집의 후예들은 1610년 경술보를 편찬함으로써 족보 편찬을 주도했다. 경술보는 둔촌 이집을 시조로 삼고자 하는 욕망이 앞섰기 때문에, 둔촌과 직접적으로 연계가 되지 않은 이점과 이손 등은 별도로 처리하였다. 1724년 둔촌의 후예들은 갑진보를 편찬하였다. 이 과정에서 둔촌과 직접적인 연계가 되지 않은 방계 역시 족보에 넣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좌절되었다. 그러자 방계는 1725년 을사보를 따로 간행하였다. 이 을사보는 시조를 신라 시기의 이자성으로 내세웠는데,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