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법과 감정 분야 관련 연구가 영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초기의 법과 감정 연구들을 통해 얻은 성찰은 법적 분석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규범적으로도 옳지않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법학 연구는 어떻게 법이 감정의 역할을 수용하는지를 설명하고 논증해야 하는 과제를 지닌다는 점이었다. 물론 초기 연구들은 여전히 법과 감정 연구의 기술적 측면에서 논의의 한계를 가지지만, 적어도 법과 감정 분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촉구하기에 충분히 풍부한 성찰들을 보여준다.
법과 감정 연구의 초기 목표가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것이었다면, 이후 연구 주제들은 ‘감정의 본질에 대한 물음’, ‘법에서 감정의 역할’ 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연구 동향에서, 본고는 최근 미국에서 법과 감정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테리 마로니(Terry A. Maroney)의 주요 연구들을 중심으로 특히 ‘사법적 감정’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사법적 감정은 법학 연구에서 그 어느 주제보다도 탐구되지 않았던 주제이며, 오히려 법적 의사결정에서 억제되고 은폐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집단적 침묵을 깨고, 사법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을 투명하게 규명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법적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고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II장에서는 오랫동안 법학에서 지속되어 온 사법적 냉정의 이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과연 이 이상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은 무엇일지, 나아가 사법적 감정에 대한 이론적 구축을 위한 과제가 무엇일지를 설정한다. III장에서는 재판에서 작동하는 감정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왜 판사의 감정을 조절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마로니가 제안한 감정 조절 모델을 살펴보고 그 적용 가능성을 탐색한다. IV장에서는 사법적 감정에 대한 연구를 위한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