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윤동주의 삶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그가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이다. 윤동주의 창씨개명은 연희전문 학적부의 관련 기록과 그의 시 「참회록」 등을 근거로, 창씨개명을 거부했으나 민족운동의 실천을 위한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윤동주의 창씨개명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호적부 등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연구의 전제가 되는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에 대한 연구와 인식 또한 충분하지 못하였기에 왜곡되어 알려진 것이었다. 창씨개명이 강요된 1940년을 전후하여 졸업한 연희전문 문과 학생들의 학적부와 졸업앨범의 창씨개명 관련 기록을 전수조사한 결과, 학적부 기록으로는 학생들의 창씨개명 여부와 시기 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연희전문 학적부의 창씨개명 관련 기록을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는 윤동주의 창씨개명과 그의 작품 「참회록」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