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영화사 저작들은 민족주의 리얼리즘 영화를 한국영화의 핵심 줄기로 규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임자 업는 나루배〉는 중요한 작품으로 거론되어 왔다. 당대의 평론가들이나 후대의 영화사가들은 일제에 대한 저항을 암시했던 철로 공격 장면에 주목한 바 있으며, 이 장면이 검열에 의해 삭제되었다는 점은 영화의 불온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여겨져 왔다. 또한 일부 장면이 삭제되었다고 해도 조선인 관객들은 영화의 함의를 수행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임자 업는 나루배〉는 그러한 평가를 가능케 해 주었던 수행적 맥락이 지워져나가는 과정 또한 감내해야 했던 영화였다.
〈정춘삼〉은 〈임자 업는 나루배〉의 해적판이며, 경성촬영소가 원본을 재편집해 만들어 낸 영화이다. 유신키네마는 경성촬영소 측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사건은 조선영화사 최초의 영화 판권 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재상영 수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식민지 조선 영화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시킨 계기였으며, 조선영화의 주요 수출 전략이 형성되어나간 경로를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정춘삼〉이 취한 재편집의 방향은 삭제된 장면의 전후 맥락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정춘삼〉이 일본으로의 수출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데, 조선인 관객들이 작동시킬 수 있었던 수행적 해석기제는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영화의 초점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자의 개인적 비극으로 전환되었다. 〈정춘삼〉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영화기업은 검열을 중대한 변수로 상정하는 가운데 선제적 조치를 취하게 되었던 바, 검열체제는 시장의 안전지향적 노선과 맞물려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이후 식민지적 특수성을 전 인류적 보편성으로, 더 나아가 종족성을 무해한 볼거리로 치환하는 작업은 주요한 수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인 조선영화 제작사로 재출범한 경성촬영소의 행보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