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는 관음보살의 주처인 보타락가산(普陀洛伽山)은 다양하게 정의되었다. 관념적인 신화적 장소, 실재하지만 현실과 분리되어 접근이 어려운 공간, 혹은 물리적 여행이 가능한 순례지 등으로 인식되었는데, 특히 순례지의 경우는 관념적 공간인 보타락가산을 실제 지리 공간에 대입하여 현실 속 성지(聖地)로 만든 결과이다. 본 논문은 여러 현실 속 보타락가산 중 하나인 중국 주산군도(舟山群島) 보타산(普陀山)과 이를 그린 일본 조쇼지(定勝寺) 소장 〈보타락가산관음현신성경도(補怛洛迦山觀音現神聖境圖)〉(이하 〈보타산성경도〉)를 통해 이 현실 속 보타락가산의 신앙적 의미와 재해석의 사례를 살펴본 글이다.
〈보타산성경도〉의 시각적 특징은 이 그림의 제작 의도를 드러낸다. 원대(元代)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타산성경도〉는 지방지(地方志)의 지도와 유사한 조형 요소 및 상세한 지명 표기로 일견 회화식 지도로 보인다. 그러나 관음보타사(觀音寶陀寺), 조음동(潮音洞) 등 특정 지역의 과장과 일관되지 않은 방위 체계 등은 이 그림이 지리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제작된 지도가 아니라 보타산 내 여러 지역과 그곳에 얽힌 신이담(神異譚)의 시각화를 통해 성스러운 공간이자 현실 속 순례지로서의 보타산의 이중적 이미지를 홍보하려는 의도 속에서 그려졌음을 알려 준다. 한편 〈보타산성경도〉는 수리명(修理銘)을 통해 일본에서 관음참법(觀音懺法)의 본존으로 활용되었다. 제재(除災)와 기복을 위한 의례인 관음참법이 일본 선종 사원에서 추선 공양(追善供養)으로도 활용된 것처럼 중국의 보타산 역시 이 의례의 맥락에서 재해석되었다. 중국의 관련 저작들과는 달리 일본의 관음참법 행법서(行法書)에 관음 주처(主處)로 중국 보타산이 언급되는 점, 중국 보타산을 그린 〈보타산성경도〉가 관음참법의 주존이 되었다는 점은 일본에서 중국 보타산이 현실의 순례지에서 더 나아가 성역화, 추상화된 공간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 준다. 일본에서 다르게 활용된 〈보타산성경도〉는 중국 보타산이 일본의 관음 신앙 체계에서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일례로, 보타락가산에 대한 개념이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형, 융합되었음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