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李用熙, 1917-1997)는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미술사학을 연구하여 한국회화사 연구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는 이동주(李東洲)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한국회화사 관련 연구서를 출간하였다. 이용희는 미술사 연구에 있어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의 영향을 받았다. 이용희는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 양식의 심리학에 대한 한 기고(寄稿)[Abstraktion und Einfühlung: Ein Beitrag zur Stilpsychologie (Abstraction and Empathy: A Contribution to the Psychology of Style)]』(1908)에 나타난 추상미술(the art of abstraction)과 감정이입적 미술(the art of empathy)에 대한 비교 분석에 크게 공감하였으며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미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이용희는 보링거의 저작을 읽고 지역과 시대에 따라 미의식은 다르며 미는 상대적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특히 이용희는 보링거가 제시한 원시 미술에 보이는 추상성은 결코 서구의 고전주의 및 사실주의적 미술(감정이입적미술)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미의 상대성’ 주장에 주목하였다. 미의 상대성에 대한 발견은 이용희의 한국회화사 연구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다니던 시절 일본인 학자들이 쓴 미술사 서적을 읽으면서 깊은 열등감에 빠졌다고 술회하였다. 한국의 그림은 보잘 것이 없으며 중국 그림을 모방한 것으로 전혀 독자성이 없다는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에 이용희는 낙담하였다. 그런데 보링거가 제기한 미의 상대성 이론을 알게 되면서 미술에는 우열이 없으며 단지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용희는 한국의 옛 그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의 옛 그림은 결코 중국 그림의 아류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그는 미의 상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그림은 한국 고유의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