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널리 확산되었던 동아시아론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본다. 성찰적이고 실천적 담론이었던 동아시아론은, 2015년 이후 마이너리티가 경험하는 사회문제(난민·여성·퀴어에 대한 혐오, 기후 위기, 동물권 논의 등)의 대안으로 거론되지 않게 되었는가. 현재 마이너리티가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에, 동아시아론이 갖고 있었던 저항성, 자기성찰성, 상황성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2장에서는 동아시아론의 ‘주변·타자’에 대한 논의가 에스니시티(민족) 문제에 초점을 맞춰 마이너리티 문제를 충분히 다룰 수 없었음을 동아시아 국제학술대회(2005년, 2015년)를 통해 분석했다. 이러한 한계를 동아시아론의 임계점으로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지점을 모색했다. 그것은 에스니시티에 기반한 저항·해방을 다층적 마이너리티의 위치에서 재인식하는 것, ‘피해자성’을 근거로 한 연대에서 ‘피해자성을 내포한 가해자성의 인식’을 통한 연대로 전환하는 것, 서구 중심주의 비판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것, 지식인 위주의 공론장을 마이너리티가 안심하고 발화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바꾸는 것 등이다.
3장에서는 쑨거의 ‘감정기억’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현재 마이너리티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식론으로 재전유했다. 쑨거의 감정기억이 중국 민중의 내재적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민족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마이너리티의 경험 속에서 감정기억이 지닌 맥락을 전환시켰다. 즉 분단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국가에서 배제된 마이너리티의 입장에서 감정기억의 의미를 묻고자 했다. 구체적으로는 구술사 연구방법론을 통해 난민·여성·퀴어·비인간의 관점에서 감정기억을 재구성하는 것, 가해자성의 자각을 통해 피해자성에 기반한 감정기억을 전환하는 것, 마이너리티에게 가해지는 지배 매트릭스의 교차적 작동을 비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다중쟁점정치로서 감정기억을 구축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결론에서는 동아시아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개적 보편성으로서 감정기억의 논의가 확장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서구이론과 다른 보편성 논의(백영서, 백낙청, 중국의 여러 논자)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감정기억이 동아시아의 마이너리티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적 보편’이 될 수 있을지 질문했다. 더 나아가 ‘타자(他者)를 타자의 자리(他在)에서 이해하기’라는 방법을 통해, 비인간의 관점에서 모색하는 감정기억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비인간의 관점에서 모색하는 감정기억이란, 인간은 비인간 존재의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면서도 그 타자와 함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인간’이라는 위치성 자체도 타재화하는 다중쟁점정치(eli clare)로서의 감정기억을 만드는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