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을 살았던 尹濟와 尹挺宇 父子의 시조 작품에 주목하여 그들의 시조 창작의 기반인 학문적 원천을 밝히고, 학문적 전통의 계승적 측면에서 父子의 시조 작품을 면밀히 분석하여 시조 창작 양상과 의미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시조 창작 양상의 차이는 향촌 내에서 작자 자신이 처한 위상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도학적 지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尹濟는 스승인 鄭介淸이 己丑獄事에 휘말려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마음의 동요가 컸고,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도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心]과 관련되는, 경전의 이치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入鄕祖로서 낯선 타지인 함평에서 향촌사족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교유와 교화의 측면에서 심성 또는 심성 수양의 문제가 중요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尹濟는 당대에 요구되는 도학적 이념과 깨달음을 명확하게 일깨우기 위해서 우리말 노래인 ‘시조’라는 문학 양식이 가진 효용성을 선택했고, 詩意의 명료한 설명과 이해를 위해 발문을 부기하고 문답 형식을 구성하는 표현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한편, 尹挺宇는 유교 경전 『周易』을 비롯하여 周敦頤, 朱子 등의 立言에서 설명되는 道學의 요체, 즉 太極의 본질과 속성을 우리말 노래를 통해 傳述함으로써 난해한 이치를 쉽게 이해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시조로서의 형식미를 온전하게 갖추지는 못했지만, ‘연시조’ 형식을 통해 主旨를 상세화시키며 자신이 체득한 도학의 이치와 깨달음을 충실하게 傳言함으로써 開導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