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미즈타리 하쿠센의 학문과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오규 소라이를 비롯한 일본 고문사학파의 영향과 그 관계를 중심으로 논증하였다. 하쿠센은 소라이학 학문의 영향을 받아 계승하고 있지만, 그 사상의 근저에 있는 정치의 주체에 대한 논점에 대해서는, 소라이가 막부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던 것과는 달리, 존황(尊皇) 사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어, 약간 다른 전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고문사학파는 소라이 사후 양분되어 갔다. 그 한 편은 다자이 슌다이를 비롯한 정치적인 측면을 지향하는 인물들과 다른 한 편은 핫도리 난카쿠를 비롯한 인물로, 정치성을 버리고 한결같이 시문의 편찬이나 고문사학 연구에 몰두하는 경향이었다.
한편 하쿠센은 소라이의 예악(禮樂) 사상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보충 개선하려고 노력하였다. 심학(心學)을 부정하는 측면에 있어서 소라이와 같은 논지를 전개하고 있으며, 고문사학의 입장에 강한 찬사를 표명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젊은 26세의 나이로 병사해 버렸지만, 오규 소라이의 학문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고, 소위 「사숙문인(私淑門人)」으로서 난카쿠, 슌다이보다 어떤 의미에서 소라이학의 진정한 계승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