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법의 지배, 개인의 권리 보장, 권력분리를 기본원리로 정착시켜 온 자유주의 사회에서 “법관은 중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법판결의 원칙이 정립되어왔으며, 법관은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서 입법부에서 제정한 법률들과 판결을 통해서 형성되어 온 법원칙 및 선례에 따라서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관의 판결이 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가 법관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의무, 즉 법에 따라서 판결해야 한다는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하고 비난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의 정의 관념에 따라 판결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논문에서는 사법판결과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논문을 발표해 온 던컨 케네디(Duncan Kennedy)의 분석을 중심으로 이 주제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특히 케네디의 주된 관점은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투입할 수 있는 길은 자유주의 법체계에서 발전되어 온 법학방법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법관들이 법해석논증을 통해서 어떻게 정치적 신념을 투입하게 되는지 그리고 법에 대한 충실의무와 법담론에 침투되는 이데올로기 간의 충돌 속에서 법관들이 어떠한 심리적 상황에 놓이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케네디는 이데올로기를 긍정적인 개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지식인들의 보편화 프로젝트로 규정한다.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그는 미국 법문화에서 형성되어온 미국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차이점을 기술하고 있다.
19세기에 형성된 사법판결론은 입법과 사법의 분리를 전제로 확립된 자유주의 사법체계에 대해서 낙관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부터 기존의 사법판결론을 적용하는 데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목적론적 법관념이 등장하였으며, 이에 근거해서 다양한 법해석론이 제시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사법판결이론들, 하트, 웅거, 라즈, 드워킨의 이론을 검토하였다.
법담론과 이데올로기담론이 상호침투하는 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케네디가 제안하고 있는 법담론의 모델을 기술하였으며, 법해석과정, 특히 정책논증을 통해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개입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법판결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과정에 대해서 법관들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살펴보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케네디가 제시하고 있는 법관의 유형들을 기술하였다. 법관들이 법해석과정에서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케네디는 이를 법관의 역할 갈등으로 설명한다. 특히 그는 프로이트의 부인(denial)의 개념과 사르트르의 그릇된 신념(bad faith)의 개념을 갖고서 법관들의 역할 갈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기술하였다.
사법판결과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한 케네디의 분석을 다루고서 그의 입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과도하게 평가함으로써 모든 법담론들을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둘째, 케네디는 사법판결에서의 최종적인 종결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자유주의 법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상충적이고 모순적인 개념들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케네디는 사법판결에서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정당화 논거의 문제점을 강조하는 반면, 법의 규범력에 대해서 소홀히 다루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다섯째, 사르트르의 그릇된 신념 개념에는 개인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내포하고 있지만, 케네디는 개별 법관이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여섯째, 케네디는 자유주의 법체계가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개념들과 원칙들로 채워져 있으며, 새로운 이데올로기들이 끊임없이 생산·재생산되고,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서로 상충하고 대립적인 개념과 주장들을 포용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케네디의 집요하고 정치한 분석이 이러한 자유주의 법체계의 강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케네디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