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해방 이후 교수요목기부터 제6차 교육과정기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제암리학살사건 서술의 변천을 살펴본 것이다. 유관순이 3·1운동의 상징인물처럼 국민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것처럼 제암리학살사건은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잔인한 진압과 학살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암리학살사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학교 국사교육이 있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해방 이후 학교 국사교육에서 이 사건을 어떠한 관점으로 서술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이 본고 작성의 일차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그러한 서술이 이루어지게 된 교육정책을 함께 천착하여 역대 정권이 어떠한 관점과 자세로 국사교육에 임하였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이차적인 목표였다.
본고를 통해 교수요목기와 제1차 교육과정기의 제암리학살사건 서술은 기억에 의존하거나 독립운동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교과서에 서술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해방 직후 일제의 청산과 민족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일면 이해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사건을 포함한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였던 것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교육과정기부터의 서술은 기존의 서술을 지양하여 교육과정과 학문적 연구에 기초한 서술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나 교육과정이란 결국 정부가 지향하는 교육목표를 서술한 것이므로 교과서 서술에 정부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 이후 이 사건의 서술은 정부의 입장에 따라 반일적 요소의 서술이 강화되거나 약화되었다. 특히 1982년 일제의 역사왜곡사건 이후에도 이러한 서술은 지속되어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 서술은 약화되고 역사적 사실만을 강조하는 서술로 변화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 작성 과정에서는 문교부(교육부)의 자료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역대 정권의 국사교육 정책을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으나, 현재 남아있는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여 활용하려 노력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향후 자료의 발굴을 통해 보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