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독립운동가로도 교육자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최윤호의 생애를 복원하고, ‘불량소년소녀’ 담론을 포함한 그의 교육론을 밝히고자 하였다. 최윤호는 일평생 독립운동가이자 농촌교육자, 교육학자로 살았던 인물이다. 대성학교에서 안창호의 교육을 받아 독립사상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한인유학생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였다. 삼일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윌로우스 한인비행학교와 캔터키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바도 있다. 1932년 귀국 후 황해도 봉산에서 농촌교육에 헌신하다가 이후 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고,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1939년 2월 병보석 상태에서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우생학적 관점과 진보주의 교육론을 수용하였고, 박사논문에서는 황해도를 사례로 조선의 새로운 교육제도를 구상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불량소년소녀’ 단속이 증가하던 추세에서도 ‘인간은 누구나 심리학적으로 이상한 측면이 있다’, ‘불량소년소녀에게도 장점이 있다’ ‘둔한 사람도 좋은 점을 개발하면 사회적 공헌자가 된다’ ‘획일적 입시교육 대신에 각자의 재능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불량소년소녀의 보호와 교육을 강조했다. 이 연구는 최윤호의 생애와 교육론을 대략적 수준에서 검토하였고, 추후 더 많은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