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근대 일본에서 발행된 조선지도에 수록된 녹둔도의 지형과 한인마을 지명을 분석한것이다.
메이지유신~청일전쟁기 발행된 조선지도 중에 녹둔도는 海島ㆍ河口島ㆍ三角洲 또는 連陸化된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양상은 이미 조선후기 지도에 시차를 두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직접 조사한 정보의 부족으로 재래의 조선지도를 복제하거나 외국지도를 참고하여 재편집한 형태로 지도가 발행되었다. 따라서 편집자가 저본으로 삼은 조선지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표현된 녹둔도가 비슷한 시기에 착종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 지도에는 근대 이후 녹둔도에 정착한 한인마을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로 편입된 녹둔도는 행정구역상 포드고르나야(Podgornaia)와 크라스노예 셀로(Krasnoe Selo)[鹿坪]로 구분되었다. 지명 중 城基[성터]ㆍ城場[장터]는 녹둔도에 성터가 있었다는 역사적 경험이 지명으로 정착된 것이었다. 충무공 이순신의 녹둔도전투가 벌어졌던 農堡는바로 성기[성장]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