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은 영천에서 발원하여 경산을 거쳐 대구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낙동강 지류에서 남강다음으로 면적이 크며, 경주 인근에 위치하여 교통로의 기능을 수행한다. 금호강 유역은 충적평야가 발달하여 농업생산력이 높은 편이다. 고대 이 같은 물적기반을 바탕으로 골벌국, 압독국, 달벌국 등의 소국이 형성되었다. 신라 중고기 수리비가 3기나 확인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한편 농업경영에서 물자의 비축과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호강은 지방에서 왕경으로 이동하는 수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창고가 발달한 것 같다. 봉무동 유적의 대규모 창고군은 배가안정적으로 갈수 있는 지점에 형성되었다. 장마 기간 물이 불어나면 영천 임포까지 배가 들어갈수 있었고, 이 지점에서 하역된 물자들은 왕경으로 육로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창고의 관리를 살펴보면, 신라의 중앙정부가 금호강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조사된 경산 소월리 유적 출토 목간은 농업경영과 관련된 자료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대구 팔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은 6부인 본피부의 존재가 확인된다. 이는 왕경 6부의 물자가 이 산성의 관리를 간섭했던 자료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