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지역 한묘에 대한 성격 규명의 일환으로 영구지역의 조사자료를 검토하였다. 영구지역은한묘가 축조된 당시의 시대 배경에서 요동군의 정체성은 물론 고조선의 강역 문제, 초기 고구려의흥기와 관련 있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구지역 한묘에 관한 조사와 연구 성과를 분석하면 축조 시기는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서한 전기~중기로 주로 패각묘가 축조되었으며 개주 광영촌 3호가 대표적이다. 2기는 서한후기로 승문 전실묘가 조영되었고 대표적으로 개주 사구 한묘 유적이 있다. 3기는 동한 중기~후기로 화문 전실묘가 축조되었는데 대표 무덤으로는 개주 구롱지 한묘와 동달영 1호 한묘가 있다. 또한 승문전으로 축조한 무덤은 전지역에 걸쳐 분포하지만 화문전으로 축조한 무덤은 주로 벽류하 서쪽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무덤에 껴묻기된 부장 유물은 토기가 대부분이고 철기와 동기 그리고 화폐 등으로 구분된다.토기의 종류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사용하던 같은 기종이 대부분이며 영구 승리촌 한묘에서는 도정(陶鼎)이, 개주 의민촌 한묘에서는 채회 도정이 출토되었다. 또한 도제 명기로는 창고형 토기를비롯하여 부엌형 토기, 우물형 토기, 화장실형 토기가 무덤방의 특정한 곳에 껴묻기되어 있었다. 화폐는 오수전과 화천이 대부분이며 반량전, 화포, 소천직일 등이 있다. 그런데 오수전은 한 무제때 주조된 것과 동한 후기에 다시 주조된 것이 함께 출토되고 있어 시기 변화를 알 수 있다.
한편 개주 의민촌 한묘에서 조사된 동인에 새겨진 음하(陰賀)는 무덤의 주인공을 요동군의 평곽현 행정관원 혹은 지방 유지로 해석할 수 있게 하여 무덤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된다.
중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영구지역의 전실묘를 요동군 속현인 평곽현, 안시현, 문현과 관련시키고 있다. 또한 서한 전기ㆍ중기의 영구지역 패각묘도 요동군 지배와 관련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원계 유이민이 위만조선 지역에 지속적으로 유입된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견해는보다 많은 자료를 제시해야 하며 상세하고 객관적인 해석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