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중국에는 서구에서 영역(英譯)된 중국 회화 이론의 용어가 수용되어 자국의 미술사를 해석하는 사례가 있었다. 사혁(謝赫, 6세기 초반 활동)의 「고화품록(古畵品錄)」에 실린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개념의 해석과 번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구의 학자들은 중국 미술을 설명할 때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의미가 모호한 이 개념을 다양한 어휘로 번역하였다. 이 가운데 자일스(Herbert A. Giles, 1845-1935)가 1905년에 기운생동을 번역한 ‘rhythmic vitality’라는 용어는 동시기 중국의 학자들에게 역으로 수용되어 중국 미술의 특질로 서술되었다. 텅구(滕固, 1901-1941), 류하이쑤(劉海粟, 1896-1994), 쭝바이화(宗白華, 1897-1986) 등의 학자들은 ‘기운생동’을 ‘리듬이 있는 생명(有節奏的生命)’이라고 해석하여 자일스의 영향을 드러내었다. 즉 ‘기운’을 ‘rhythm’으로 이해한 서구 학자들의 초기 연구가 동시기 초국가적 학술의 특징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기운’보다는 ‘생동’에 중점을 둔 자일스의 해석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로울리(George Rowley, 1892-1962), 소퍼(Alexander Soper, 1904-1993), 케힐(James Cahill, 1926-2014) 등은 ‘기운생동’의 중점은 ‘기운’이라고 역설하였으며 이후 ‘기운’의 번역은 ‘spirit resonance’ 또는 ‘spirit consonance’로 정착되었다.
이 사례는 미술사의 서술에서 번역과 해석 그리고 그로 인한 이론의 변형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더욱이 연구의 성과가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번역에 의한 이론의 변형은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