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도〉는 16세기에 안견파(安堅派) 화풍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조선 전기의 회화작품이다. 이 그림은 표면적으로 보면 특정한 주제가 없는 ‘일반 산수화(generic landscape)’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의 원경(遠景)에 보이는 연무(煙霧)에 잠겨 있는 사찰은 〈산수도〉가 연사모종도라는 것을 알려 준다. 연사모종도를 구성하는 정확한 도상(圖像)적 요소들은 분명하지 않지만 강 너머 또는 언덕 위에 있는 곳을 보여 주는 공간적 거리감, 안개에 싸여 있는 사찰, 저녁 시간, 종소리를 듣는 인물들이 중요한 시각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길을 걸어가는 행인(行人)들, 안개에 싸여 있는 사찰, 저녁 무렵의 풍경이 나타나 있는 〈산수도〉는 특정한 주제가 없는 일반 산수화가 아니라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한 장면을 그린 〈연사모종도〉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처럼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산수도’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상팔경도 병풍 및 화첩이 해체되고 이후 8폭의 그림이 단폭(單幅)으로 후대에 전해지면서 이 작품들은 ‘산수도’가 되었다.
현재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중행려도(雨中行旅圖, Rainy Landscape with Travelers)〉는 전경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는 승려를 근거로 〈연사모종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우중행려도〉에는 사찰이 그려져 있지 않다. 안개가 산과 계곡에 자욱하지만 사찰은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연사모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안개에 싸인 절[煙寺]’이 이 그림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우중행려도〉는 연사모종도로 불릴 어떤 근거도 없다. 〈우중행려도〉와 같이 연사모종도로 오인(誤認)될 수 있는 그림도 있지만 연사모종도로 알려진 그림이지만 연사모종도가 아닌 그림도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 소장되어 있는 〈연사모종도〉이다. 〈연사모종도〉로 알려진 것은 화면의 왼쪽 상단에 적혀 있는 ‘촉사모종(燭寺暮鍾)’과 명나라 초기에 활동했던 인물인 사구소(史九韶, 15세기 초에 주로 활동)의 「소상팔경도기(瀟湘八景圖記)」 중 ‘연사모종’에 대한 시(詩) 때문이다. 〈연사모종도〉에는 비록 사찰이 나타나 있지만 너무도 미미한 화면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 〈연사모종도〉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전경에 나타나 있는 강가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다. 이러한 ‘정박한 배’라는 모티프는 ‘어촌석조(漁村夕照)’ 또는 ‘원포귀범(遠浦歸帆)’을 그린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야마토분카칸 소장의 〈연사모종도〉의 주제는 ‘연사모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