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자 그리스도는 아기 예수가 수난의 도구로 장식된 범선을 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도상으로, 현전하는 작품 중에서는 안토니오 리치(Antonio Ricci, c. 1565-1635)의 유화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항해자 그리스도 도상은 유럽에서 비롯되었으나 이 지역에서 제작된 미술 작품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알려진 항해자 그리스도 이미지들은 오히려 인도, 중국, 필리핀, 멕시코, 페루 등 17세기 유럽과 활발히 교류하던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필사본 삽화, 상아 부조, 우아망가석 조각 등으로 만들어진 이 이미지들은 각 지역의 미술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도상적으로는 서로 매우 유사하다. 이 논문은 이러한 유사성에 주목하여 세계 각지에서 제작된 항해자 그리스도 이미지들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한편, 이 이미지들이 현재는 전하지 않는 16세기 말 유럽에서 제작된 판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유럽 미술에서 흔하지 않은 이미지가 아시아와 아메리카 각지에서 활발히 제작되고 유통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 사실은 대항해시대 미술 교류를 유럽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한 기존의 관점을 재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