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世絵師美丸の文化六・1809年から文政五・1822年までという、初・中期創作活動に注目した。画号でいうと、主として北川美丸、小川美丸、歌川美丸と呼ばれ、最後に北尾門下の影も現れ始める時期に当たる。北川美丸こと歌川美丸の文政五年までの作画活動を考察する過程で、先ずは先行研究と改号年度に再検討の余地があることを論じた。それから、第一、師系は「喜多川月麿→歌川豊国→北尾政美」であると順序を訂正した。画号として、文化六年「北川美丸」、文化七年「北川美丸」から「小川美丸」へ、文化十年以降文政五年までは「歌川美丸」であるからである。第二、先行研究では「歌川」と改姓されたのが、文化十一年とされるが、文化十年からであると訂正した。そして、文政五年は歌川美丸、北尾美丸、北尾重政二代目が同時に使われる過渡期であることを指摘した次第である。
우키요에 화가 요시마루의 1809(文化六)년부터 1822(文政五)년까지 라고 하는 초・중기 창작활동에 주목하였다. 화가로서의 이름(画号)으로 말하자면, 주로 기타가와 요시마루(北川美丸), 오가와 요시마루(小川美丸), 우타가와 요시마루((歌川美丸)라고 불리우고, 마지막에 기타오(北尾) 문하생으로서의 모습도 비춰지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한다. 기타가와 요시마루 즉 우타가와 요시마루의 1822년까지의 그림(作画)활동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선은 선행연구와 개명(改号) 연도를 재검토할 여지가 있음을 논하였다. 그리고 나서 첫째, 스승계열은 「기타가와 쓰키마로(喜多川月麿) →우타가와 도요쿠니(歌川豊国) →기타오 마사요시(北尾政美)」라고 사사하는 순서를 정정할 수 있었다. 화가 이름(画号)으로서 1809(文化六)년 「기타가와 요시마루」, 1810(文化七)년 「기타가와 요시마루」에서 「오가와 요시마루」로, 1813(文化十)년 이후 1822(文政五)년까지는 「우타가와 요시마루」라고 서명한 작품 예를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선행연구에서는 「우타가와」라고 성을 바꾼 것이 1814(文化十一)년이라고 하는데, 1813(文化十)년부터라고 정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1822(文政五)년은 우타가와 요시마루, 기타오 요시마루(北尾美丸), 기타오 시게마사2세(北尾重政二代目)가 동시에 사용되는 과도기임을 지적한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