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서구 철학의 건축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 주목하면서 철학과 건축과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철학의 건축에 대한 이해에 대한 규명이기도 하며, 철학의 자기 정립에 어떻게 건축이 기여하였는지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철학사는 사유를 전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건축을 동원해왔다. 건축은 철학 시스템의 모델로서 특권적 지위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정연한 논리 체계의 수립이 철학의 제일가는 목표였기에 건축을 참조하면서 철학의 사유가 건축적 속성을 띠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철학의 담론이 건축을 이상적 모델로 삼아 견고하고 안정된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서구 철학은 구축적인, 혹은 건축적(Architectonic)인 특성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철학 담론에서 논의된 건축은 실체로서 건축이 아니라 은유로서 건축이었다. 건축을 은유 삼아 철학은 서구 철학함을 사유의 건립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학문의 학문’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 건축을 참조해 철학의 정초(定礎)가 가능했던 것은 서구에서 건축이 단순한 짓기(building)가 아니라 근원적인 건립’으로서 아르케(arche)와 테크네(techen)를 품은, 진정한 앎(知)을 수반하는 제작(poesis) 활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체계와 질서를 목표 삼는 구축중심적인 서구의 철학적 건축술은 통일된 형식을 지향하기에 동일성을 강조하고 타자성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 주류 철학의 로고스 중심주의는 건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은유로서 건축이 지니는 문제와 한계를 제기한다. 이런 배경에서 근대에 등장한 반건축적 사유는 서구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 지닌 구조의 부실성 내지 토대의 부재에 주목하고, 합리적 이성을 해체하고 타자성과 차이를 강조한다. 건축적 사유가 철학의 기저에 깔려 있는 체계와 질서, 이성과 논리, 그리고 동일성에 대한 욕망과 의지를 드러낸다면, 반건축적 사유는 그것이 지닌 문제와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바깥의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흐름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의 탈근대적 사유와 해체론은 철학의 구축적 사유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으며 건축 실무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 새로운 사조를 낳고 있다. 실로 서구 철학과 건축 사이의 상호의존 관계와 길항 작용은 특권적 은유로서 건축이 담론의 구축에 담당했던 역할에 주목하게 한다.